Baseball Essay

김정민이 보여준, 고참의 "존재의 이유"

유피디 2008. 5. 23. 12:24
 

2006년 9월, LG에서는 특별한 은퇴경기가 있었다. LG의 “신바람의 상징” 중 마지막으로 남은 서용빈의 은퇴경기였다. 서용빈의 존재감은 LG팬들에게 단순한 스타 이상이다. 그는 팀 전성기의 아이콘이었고, 무명선수가 노력으로 성공한 신화였으며, 프랜차이즈 스타가 모두 떠난 팀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자존심이었고, 잦은 부상과 공백을 이기고 꿋꿋하게 돌아온 팀의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서용빈의 은퇴경기가 열리던 날, 또 한 사람이 함께 은퇴를 했다. 프로 14년차 포수 김정민. 국가대표 출신에 1993년 2차 1순위 지명, 화려하게 입단했지만 김동수와 조인성에 밀려 늘 백업이었던 선수. 프로통산 타율이 2할 5푼 남짓인 그저 그런 수비형 포수. LG의 전성기를 함께 했으나 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던 그의 경력에 걸맞게, 은퇴식도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서용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때 김정민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았다. 김정민 본인도 “스타도 아닌데 은퇴식을 마련해주어 감사하다”며 겸손해했을 정도.


그러나 이런 김정민에게 “스타도 아닌데 은퇴식을 마련해주었으니 고마워하라”고 구단이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사실 김정민의 은퇴는 LG에게도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퇴 두 해 전 플레잉코치로 잠시 뛰었으나 다시 선수의 신분이 되었던 김정민은, 팀에서 핵심전력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조인성이라는 걸출한 포수가 있었고, 이성열과 최승환이라는 유망한 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생활에 미련이 남았던 김정민도 코치연수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한 구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인성은 아직 미완성 포수였고, 최승환은 더욱 그랬다. 심지어 둘 중 한 명이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자리를 대체할 전력도 변변치 않은 것이 LG의 현주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라는 이름으로 선수생활을 마친 김정민. 그의 14년은 늘 그랬다. 그는 보험용 선수였다. 주전 포수가 탈나면 그 자리를 잠시 메워주면 그만인 선수였다. 그래서 그의 중요성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LG는 김정민이라는 “보험”을 해지할 때 그다지 아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을 김정민이 남들처럼 한 번이라도 은퇴에 반발하고 트레이드를 요구할 용기를 내보기 어려웠을 것도 당연하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바꾸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2007년, LG는 모든 것이 좋았다. 전력보강도 충실히 했고 선수들의 의욕도 넘쳤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보험”이 없었다. 시즌 초 백업포수 최승환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이성열은 입단 후 “포수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해 포수로 실전에 투입할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조인성 혼자 모든 것을 떠안았고, 조인성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LG도 서서히 뒷심이 달리는 경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조인성을 보면서도 대신 마스크를 씌울 백업포수 한 명 없었던 것이 LG의 현실이었고, 그 때 가장 절실했을 이름이 바로 “보험” 김정민이었다.


2008년, 김정민은 다시 선수로 돌아왔다. 은퇴 후 1년간 스카우터와 전력분석원을 맡았던 그이다. 배터리 코치로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백업포수의 부재를 혹독하게 겪었던, 그리고 이성열의 외야 전향을 결정해버린 그 상황에서 LG가 선택할 “보험”은 김정민뿐이었다. 선수생활에 미련이 남았었던 김정민도 흔쾌히 복귀를 수락했다. 우리나이로 서른아홉. 고작해야 1~2년, 고작해야 1~2이닝을 책임질 궂은일이었지만, 김정민은 개의치 않았다. 원래 그가 하던 일이 그런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그는 안정이 보장된 프론트직을 버리고 다시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고된 포수로 돌아왔다.


시즌이 시작하고 45경기 안팎을 치른 지금, LG는 다른 팀들과의 전력차를 드러내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5월 초부터 시작된 9연패는 팀 창단 이래 최다연패로 기록되었을 정도이다. 팀을 이끌던 고참 선수들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거나 마지못해 아픈 몸을 이끌며 뛰고 있다. 도무지 나아질 것이 없는 암울한 상황, 그러나 LG는 5월 중순부터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박명환 최동수 권용관 박용택 등은 여전히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김정민이다.


지난 시즌 홀로 무리했던 조인성이 시즌 초부터 급격한 체력 부담을 드러내며 공수 양면에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LG는 다시 “보험”을 꺼내들었다. 고작해야 1~2이닝 백업용이라 여겨졌던 김정민에게 선발 마스크를 씌우기 시작했다. 9연패를 끊던 5월 11일 한화전 이후 최근 10경기에서 절반인 5경기에 김정민이 선발로 출전했는데, 이 5경기에서 LG는 4승 1패의 호성적을 거두었다. 5경기의 자책점은 단 11점. 평균자책 5점대를 상회하기도 하는 LG의 투수진을 감안했을 때 엄청난 변화이다.


이 기간 중 김정민의 투수리드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아무래도 봉중근이 등판한 두 경기일 것이다. 올 시즌 신무기 너클커브를 장착해 시즌 초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5월 들어 실점이 많아진 봉중근은, 김정민과 호흡을 맞춘 최근 2경기에서 단 1점만 내주는 에이스로 변신했다. 승부구로 너클커브 대신 과감한 몸쪽 직구를 택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인데, 그것을 이끌어낸 것이 바로 김정민이다.


게다가 1년 만에 다시 든 “보험”은, 그 보장범위가 더 넓어진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김정민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비였는데, 공격에서도 쏠쏠한 역할을 해준 것이다. 많은 타석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3할 이상의 타율과 4개의 타점을 기록해 허약한 하위타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냉정히 말해, 김정민은 1할 타율을 기록하더라도 수비만 튼튼히 하면 제 몫은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비는 기본이고 방망이까지 날카롭게 돌리고 있으니, LG에게는 천군만마와 다름없는 활약이다. 물론 조인성의 체력안배라는 효과까지 더해 1석 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


데뷔 이래 도루저지 능력은 늘 인정받았으나 투수 리드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조인성에게는, 지금 김정민의 활약이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할 교본이 될 것이다. 제구력이 불안한 이승호를 다독거리며 2실점으로 막아낸 18일 KIA전이나, 초반 몸이 덜 풀린 옥스프링의 구위를 끌어올려낸 22일 삼성전은, 제구력이 불안하고 경험이 부족한 LG 투수진을 이끌 안방마님으로서의 모범을 보인 경기이다. 신인 정찬헌이 첫 선발승을 올린 20일 삼성전, 이 날 마스크를 썼던 조인성은 평소와 다른 적극적인 승부로 어린 후배의 짐을 가볍게 해주었다. “김정민 효과”가 조인성에게로 전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민의 이런 활약은 순전히 경험과 관록으로 쌓인 것이다. 14년을 백업으로 보냈으나, 그만큼 그라운드와 불펜에서 많은 투수의 공을 받아보았던 관록이 발휘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고참 선수들은 기록지에 남는 활약에 비해 연봉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래를 위해 기회를 주어야 할 젊은 유망주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팀이 어려울 때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는 디딤돌은 고참일 수밖에 없다. 어린 후배들이 팀의 주역이 되도록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줄 멘토 역할도 고참이 해주어야 한다.


비록 기록은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엔트리 한 자리나 차지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을지라도, 결국 팀에서 고참이 필요하다는 “존재의 이유”를 김정민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팀이 어려운 상황이 쳐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 “보험” 김정민. 그가 얼마나 더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LG 코칭스태프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기에, 김정민의 경험이 조인성 최승환 등 후배들에게까지 전달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원래 세대교체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