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종범 이후 무려 11년 만에 나온 60 도루. 한국 프로야구도 점차 기록의 틀이 잡혀가면서 무관심도루는 기록에서 카운트하지 않게 되면서 꽤 오랫동안 구경하기 어려웠던 신기록이다. 그 주인공은 LG의 이대형. 하지만 이대형의 기록은 그다지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도루라는 기록에 있어 처음 제기된 “영양가 논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록에도 “영양가”가 있다는 것은 종종 인구에 회자되곤 하는 내용이다. 가령, 어떤 4번 타자가 팀의 패배가 확정된 순간에 솔로 홈런만 많이 때려 홈런왕이 되었다고 해보자. 홈런의 개수로 타이틀홀더가 결정되므로 분명한 홈런왕이지만, 팀의 승패에 도움이 되는 “영양가”가 없기 때문에 홈런왕의 가치를 쉽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올 시즌 최하위 팀 소속으로 극도의 슬럼프를 겪으며 “도루만 잘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이대형에게도 “영양가 논란”이 따라붙는 것도 결국 그의 도루가 “팀 승리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도루와 홈런의 차이는, 승패에 보탬이 되지 않는 순간에 자기 기록만 늘리기 위해 도루할 때 아예 카운트를 하지 않는 “무관심도루”가 있다는 점이다. 즉, 이대형의 60개의 도루는 LG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여기에 “영양가 논란”을 붙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어차피 야구는 기록의 경기. 과연 이대형의 60 도루는 무가치한 것인가? 한 번 기록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인용한 스탯 중 본 글을 위해 새로 산출한 경우는 순위를 첨부하였습니다.)
1. 왜 이대형은 저평가 받는가?
타율 : 0.268 (33위) | 출루율 : 0.322 (38위)
이대형이 톱타자로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바로 출루율이다. 흔히 톱타자의 최고 덕목을 출루율이라고 하는데, 이대형의 출루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42명 중 38위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좋지 못하다. 당연히 출루율만 보자면 이대형은 톱타자로서 낙제점이다. 도루를 많이 하는 빠른 발이 있다 하더라도, 대주자감은 될지 몰라도 톱타자감은 아니라는 평가는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삼진 : 76개 (4위) | 장타율 : 0.282 (42위) | FO/GO : 0.24 (42위)
게다가 이대형은 톱타자가 아닌 타자로서의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거포가 아니면서 삼진은 전체 4위에 달할 정도로 공을 배트에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컨택이 부정확하기 때문에 땅볼이 많이 나오는데, 땅볼 대 플라이볼의 비율을 표시한 FO/GO로 보면 규정타석을 채운 42명 중 가장 땅볼 친화적인 타자임을 알 수 있다. 땅볼이 많기 때문에 장타가 나오지 않아 129개의 안타 중 장타가 단 6개뿐이다. 장타율도 가장 낮은 0.282. 장타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IsoP(장타율-타율)는 0.015에 불과하다.
2. 그러나 과연 그런가?
득점 : 69개 (9위)
출루율이 38위에 불과한 선수가 득점은 9위에 올라있다. LG에 엄청난 클러치 히터가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 영양가 없다고 비난받는 도루 덕분이다. 야구는 점수를 내는 경기이다. 따라서 톱타자의 최대 미덕은 출루율이 아니라 득점이다. 출루율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많이 출루해야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기 때문 아닌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의 팀 동료 박용택과 비교해보아도 된다. 박용택의 출루율은 이대형과 비슷한 0.328(순위는 이대형보다 한 단계 높은 37위이다). 장타율은 이대형보다 4푼 정도 높고, 전체 17위에 해당하는 16개의 도루도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박용택의 올 시즌 득점은 전체 44위에 해당하는 38개에 불과하다. 출루율 37위의 선수가 득점 44위를 할 수밖에 없는 LG의 현실에서, 출루율 38위가 득점 9위를 한 것이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득점율 = 득점 / 출루(안타+사사구+고의사구) : 0.408 (7위)
이를 부연하기 위해 “득점율”이라는 임의의 스탯을 산출해보았다. 즉, 해당 선수가 안타나 사사구로 출루한 횟수와 득점에 성공한 횟수를 비율로 계산한 것이다. 이대형의 득점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42명 중 7위에 해당한다. 득점율이 높으려면 (홈런을 때리지 않는 이상) 타점을 올려줄 동료의 지원이 필요한데, LG보다 중심타선이 훨씬 튼튼한 SK나 롯데의 주요 선수들보다 이대형의 득점율이 높다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능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참고로 올 시즌 이대형을 뺀 나머지 LG 선수들의 평균 득점율은 약 0.299 정도로 정리된다. 만약 이대형이 LG의 평균만큼만 하는 선수였다면 그의 득점은 50점에 그치게 된다. 즉, 이대형의 주루능력이 19점 정도의 부수입을 LG에 가져왔다고 정리해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물론 득점율이라는 임의의 스탯은 변수가 적지 않다. 가령, 내야땅볼로 선행주자를 죽이고 자신은 세이프된 후 득점하는 경우 기록상으로는 출루로 남지 않기 때문에 출루당 득점을 계산할 때 기록의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대형의 기록이 인정을 받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선행주자를 죽이고 자신이 도루를 추가한다는 점인데, 그의 61개 도루 중 이러한 경우는 단 9번뿐이다. 9개의 도루를 빼더라도 여전히 도루 1위에 해당되는 수준이니 무작정 이대형의 도루 능력을 폄하할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본다.)
루타+a = 총루타+사사구+고의사구+도루 : 237개 (16위)
장타력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베이스를 밟을 수 있는 능력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2루타”와 “볼넷 후 도루”는 똑같이 2개의 베이스를 밟은 것이므로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장타력이 떨어지는 이대형의 루타수는 136개로 전체 28위에 불과하지만, 그는 부족한 장타력을 도루로 보완하고 있다.
장타를 포함한 안타로 인한 총루타수와 사사구로 베이스를 밟은 것, 여기에 도루로 베이스를 밟은 것까지 모두 합친 수치로 계산하면 이대형이 올 시즌 밟은 베이스는 총 237개로, 이것은 전체 16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물론 심리적 측면을 감안하면 장타와 도루의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대형은 출루율 4할이 넘는 박한이보다도 더 많은 베이스를 밟게 된 것이다.
3.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007년 이대형이 도루왕으로 급부상하면서 대표 팀에도 이름을 올리던 시절, LG 김재박 감독은 이대형을 두고 “순둥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좀 악착같고 대범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스프링캠프에서는 일부러 욕설을 하고 다니게 지시했다고 할 정도였다. 올 5월, 이대형이 이른바 “사인 훔치기” 논란에 연루되었을 때에도 LG 프론트에서는 “감독이 시켜도 하지 못할 순둥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대형의 타율이 급락한 것은 그 때부터이다. KIA 박정태로부터 빈볼을 맞고 임준혁과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5월 18일을 기준으로 전반기까지의 이대형의 스탯은 아래와 같다.
게다가 빈볼 시비가 붙기 전 이대형의 타격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LG로서는 새 용병 페타지니를 영입하는 등 타선에 분위기 전환을 이루며 공격력이 서서히 살아나던 시기였고, 그 선봉에서 이대형은 누가 보아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심지어 취약점으로 지적받는 출루율조차도 5월 이후 4할을 훌쩍 넘기고 있던 중이었으니, 최소한 톱타자 자질을 의심받을 정도의 타자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빈볼 시비 이후 이대형은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약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대형의 약점은 이미 모든 투수들이 다 알고 있고, 그래서 약점을 공격해도 빗맞은 땅볼에 내야안타로 살아나가는 얄미운 타자가 이대형 아니던가. 이대형의 멘탈이 강하지 못하다는 기존의 보도를 감안하면, 이대형이 빈볼 시비 이후 정신적 압박감 때문에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정리할 수도 있는 셈이다.
다행히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이대형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후반기 이후 그의 스탯은 아래와 같다.
이대형의 엉성한 타격 자세는 여전하지만, 그렇게 상하체가 분리되는 엉성한 자세로도 그는 3할을 때릴 수 있는 타자라는 반증인 셈이다. 물론 타격자세를 고쳐 장타를 더 많이 때리는 타자로 변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 번 몸에 익은 타격자세를 함부로 고치는 것은 분명한 모험이다. 요미우리의 이승엽이 부진한 원인 중 하나가 너무 타격 폼을 자주 바꾸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LG의 김용달 타격코치도 지금의 자세가 이대형에게 맞는 것이라면 억지로 교정할 마음은 없는 듯싶다. 그동안 LG의 젊은 타자들이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잦은 코칭스태프 변경으로 인해 타격 폼을 수시로 수정해야 했던 것도 있었음을 감안하면, 억지로 자세를 뜯어고치지 않겠다는 김용달 코치의 의중은 옳다고 본다.
야구선수의 유형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대형 같은 스타일의 톱타자도 한 명쯤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포수가 피치아웃을 해도 2루를 훔치는, 평범한 땅볼을 내야안타로 만드는, 그래서 내야수가 서둘러 수비하다가 실수하게 만드는, 어지간해서 병살을 때리지 않는, 이대형만의 특별한 능력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문제가 멘탈이라면, 이대형이 극복해야 할 것은 외부의 비난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