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절반 이상이 투수 놀음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선발투수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강조되는 대목입니다. 야구선수 중 가장 몸값이 바싼 포지션이 선발투수이기도 하죠. 2008년 시즌, 8개구단의 선발진을 정리해봤습니다. 가장 강한 선발진은 어디였을까요?
먼저 8개구단 선발진의 기록입니다.
이것은 선발투수의 기록만 모은 것입니다. 선발과 불펜을 병행한 투수는 선발등판시의 기록만 가산되었습니다. 평균자책으로 보면 SK-롯데-KIA가 3점대 평균자책의 선발투수진을 보유했고, LG와 삼성은 5점대의 부진한 평균자책을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4위 삼성이 선발 평균자책은 최하위라는 점입니다. 선동열 야구가 원래 선발보다 불펜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라고는 하지만 예년에 비해 선발이 너무 부진했고, 이 때문에 막판까지도 4강이 힘들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고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튼튼한 불펜과 리빌딩된 타선 덕분이었죠.
선발투수의 이닝을 보장하지 않고 불펜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타일의 야구가 SK와 삼성이 대표적인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두 팀의 선발 승률입니다. SK의 선발 승률은 0.629, 삼성의 선발 승률은 0.422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SK는 선발이 승리투수 요건을 채운 뒤 일찍 강판되고 불펜이 틀어막은 경우가 많았고, 삼성은 선발이 부진해 조기강판 당한 뒤 경기를 뒤집은 경우가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자책점)와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3자책점)은 모두 롯데가 월등히 많습니다. 선발투수의 투구이닝도 가장 많았고, 그만큼 선발진의 구위가 좋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히어로즈 선발진은 평균자책은 보통이지만 WHIP은 상위권 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투수들의 구위는 좋았으나 팀전력이 떨어져 실점이 많았던 셈입니다.
아래는 구단별 선발투수의 투구이닝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프 색깔이 빨간색은 1~2선발급의 평균자책(3.55 이하)을 기록한 투수, 오렌지색은 평균 이상의 평균자책(4.29 이하)을 기록한 투수, 파란색은 평균 이하의 평균자책(4.30 이상)을 기록한 투수입니다. 1~2선발급의 기준은, 투구이닝 100이닝 이상으로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정도 이닝을 소화하려면 각 팀의 주전 선발 자리로 확실히 고정된 투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19명입니다. 8개구단에 19명이면 1~2선발급 정도 되는 투수가 맞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래프만 봐도 "사기"에 가까운 선발진입니다. 에이스급 투수가 3명, 간간히 등판한 투수도 절반 이상은 성적이 괜찮았습니다. 이만하면 시즌 내내 흔들리지 않는 5선발 체제를 구축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투수진입니다. 특히 김광현-채병용의 젊은 투톱은 외국인 투수의 도움 없이도 언제든지 안정된 투수진을 꾸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SK는 올 시즌 사실상 외국인 선수 1명만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내년에는 이승호까지 가세할 예정입니다.)
두산은 2위팀 치고 선발진은 튼튼하지 못한 편입니다. 사실상 주전급 선발 중 에이스급은 없었습니다. 김명제와 이혜천 정도가 평균 이상으로 버텨주었으나, 김명제는 후반기에 거의 쉬었고, 이혜천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전천후로 등판했습니다. 사실상 1선발이나 다름없었던 랜들은 갈수록 한계가 노출되는 추세이며, 김선우도 아직 한국야구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롯데는 5선발이 가장 확실하게 운영된 팀입니다. 특히 손민한-장원준 투톱은 SK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송승준도 한국야구에 잘 적응을 했고, 시즌 중반부터 합류한 조정훈의 활약은 그야말로 기대 이상입니다. 승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이용훈도 성공적으로 복귀를 마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외국인투수 매클래리가 가장 부진한 선발투수였을 정도이니, 이 토종 선발진의 위력은 내년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선발 평균자책 최하위가 삼성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윤성환만 평균 이상이었고, 나머지 투수는 모두 부진했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배영수도 부진했고, 마당쇠 정현욱도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아서인지 선발등판 시에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외국인 투수도 번번히 신통치 못해 골치를 썩혔는데, 마지막 용병인 에니스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지만 시즌 막판 부상으로 귀국해 재계약은 불투명합니다. 게다가 이 선발진 중 전병호와 이상목은 내년에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용병 농사에 따라 또 희비가 갈릴 수 있어 보입니다.
한화도 선발진은 류현진을 빼면 신통치 못한 편입니다. 그나마 2선발 몫을 했던 정민철도 부진했고, 기대를 모았던 유원상은 아직 제구력 불안으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퇴가 멀지 않은 송진우, 불펜을 오가는 양훈과 최영필 등 대체 선발진도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닙니다. 유원상이 껍질을 깨서 류현진과 투톱을 이룬다면 그래도 중심이 잡힐텐데, 현 상황에서는 계속 류현진에게만 부화가 몰리는 지경입니다.
KIA는 투수진은 상위팀 못지않게 좋습니다. 다만 물 먹은 타선 때문에 6위에 그쳤을 뿐, 투수진만 보면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을 멤버입니다. 특히 윤석민-이범석의 투톱이 매우 좋았고, 대체용병으로 영입한 디아즈와 데이비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재응은 부상 등으로 인해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지만, 서재응까지 제 컨디션으로 합류하면 선발진은 8개구단 중 가장 무서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히어로즈의 좌완 듀오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황두성과 김수경도 충분히 각각 불펜 외도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었지만 나름 선방했습니다. 팀전력이 많이 약해지고 훈련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유니콘스 시절의 밑바탕은 아직 없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내년에는 상무에서 신인왕 출신 오재영이 돌아오기 때문에 용병 없이도 선발진을 꾸리는 것은 지장이 없을 듯싶습니다.
봉중근과 옥스프링 외에는 선발투수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투톱의 파워만 놓고 보면 LG도 절대 상위권 팀에 뒤지지 않지만, 그 뒤를 받쳐줄 선발이 전무했습니다. 브라운의 부진과 박명환의 부상이 컸고, 열악한 상황에서 정찬헌만 매를 많이 맞았네요. 후반기에는 심수창이 3선발 노릇을 했는데,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칩니다. 내년에도 페타지니 재계약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결국 빈 3자리의 선발진은 국내 선수들로 메워야 하는데, 박명환의 복귀 또는 FA 영입 등의 이슈가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SK와 롯데의 선발이 강했고, KIA와 히어로즈의 선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화와 LG는 특정 선수만 분전했고, 삼성은 그마저도 부족했으며, 두산은 선발진은 썩 좋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발에 확실한 중심축이 있는 SK 롯데 KIA 히어로즈 LG는 남은 선발진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팀전력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상당히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반면 선발진의 중심 자체가 아직 불안한 두산과 삼성은 용병 농사가 다른 팀들보다 훨씬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