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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주,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라!

한기주 수난시대이다. 올 해 유독 각팀의 마무리 투수들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가운데, 유독 한기주가 더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올림픽 때문이다. 정대현이 부상 후유증으로, 오승환이 구위 저하로 신통치 않았기에 대표팀 마무리 투수로 일찌감치 낙점 받은 한기주는, 정작 본선 무대에서 상대팀을 가리지 않고 실점을 허용하면서 마무리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다. 선수 본인의 자신감 상실을 우려한 코칭스태프는 틈나는대로 한기주를 올리며 자신감 회복의 기회를 주고 있지만, 이것은 더 큰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155km를 우습게 넘기는 광속구는 여전하다. 아무리 미국이나 일본에 155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하위 타순에서 모두 만만하게 공략할 수 있는 구위는 아니다. 실제로 올림픽 예선 일본전에서도 한기주의 구위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었다. 시즌 중에도 다소 기복은 있었으나 평균자책 1.69, WHIP 1.02, 피안타율 0.212의 빼어난 피칭을 보이고 있었다. 21세이브로 전체 3위.

리그에서의 투구내용도 나쁘지 않다. 그가 던진 투구수의 10% 이상을 타자들이 헛스윙 했으며(이것은 김광현 오승환 등과 비슷한 수치이다), 22% 이상이 파울 타구가 되었다(역시 오승환과 비슷하다). 즉, 투구의 1/3을 타자들이 헛치거나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뜻으로 그의 구위가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0km 이상의 광속구, 그리고 간간히 섞어 던지는 슬라이더만으로도 타자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기주는 우커송 경기장에서 연일 악몽을 드리우고 있을까? 결과론이지만, 타자들이 직구만 노리고 있고 한기주는 거기에 대고 직구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48이닝 동안 16개의 사사구만 내준 한기주를 제구력이 나쁜 투수라 부르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제구력이 좋지 못한 투수가 맞다. 엄정욱 최대성 등 155km 이상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해 애를 먹는데, 한기주의 경우는 코너워크가 덜 되는 가운데 직구가 많다는 점에서 역시 제구력이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구력이 좋지 못해도 1이닝 정도만 던지는 마무리 투수라면 강속구가 충분한 경쟁력이 된다. 과거 LG의 뒷문을 책임졌던 신윤호(現 SK)를 보라. 그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빠른 150km대의 묵직한 직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구력 불안으로 몇 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러다가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의 조언으로 슬라이더를 장착했고, 제구가 되지 않는 슬라이더만으로도 타자들은 겁을 먹기 시작해 순식간에 리그 톱 클로저가 될 수 있었다. 직구 외의 다른 레퍼토리가 타자의 머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 타자들은 빠른 직구에 대처하는 것이 그만큼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기주의 슬라이더는 직구만큼 위력적인 구질은 아니다. 그러나 슬라이더의 구사 빈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타자들은 구질을 예측할 때 경우의 수를 더 고민해야 하고, 머리 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155km 이상의 직구를 맞이하면 비록 그것이 한가운데 직구라 하더라도 쉽게 배트를 내밀기 어렵다. 그의 슬라이더가 각이 예리한 편은 아니지만 구속은 여타 투수의 직구와 비슷한 140km대를 찍곤 한다. 즉, 타자들이 예측을 못한 상태에서 정타로 날리기는 쉽지 않다는 소리이다. 오승환이 언터처블의 모습으로 심지어 MLB 타자들에게까지 극찬을 받던 시절, 그의 레퍼토리는 거의 대부분이 직구였다. 당시 오승환에게 변화구 장착을 주문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워낙 직구의 구위가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한기주를 이야기할 때 흔히 “자신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자신의 직구에 대한 자신감,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 직구 승부를 고집하다가 얻어맞는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표현이 아니라 한기주의 소속팀 조범현 감독의 표현이니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감”이야말로 마무리 투수의 가장 소중한 무기이다. 올 시즌 한기주의 IRS(승계주자 실점)은 9/34로 리그 평균보다 훨씬 양호하며, 2007 시즌에는 7/38로 마무리투수 중 단연 으뜸이었다. 분명 한기주는 주자가 있다고 위축되는 “새가슴”과는 거리가 먼 선수이다.

이번 올림픽의 결과가 어떻게 끝맺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기주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끼워 넣는 슬라이더가 아니라, 본인이 좀 더 각을 예리하게 다듬어 성의 있게 던지는 슬라이더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직구의 완급을 조절하면 금상첨화이다. 155km의 직구를 기다리는 타자에게 던지는 140km대 직구는 그 자체로 체인지업의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굳이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을 연마할 필요도 없다. 체인지업을 몸에 익히는 투수들이 점점 구속의 저하를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며,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함께 던지는 투수의 팔꿈치가 얼마나 쉽게 고장 나는지도 무수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기주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의 업그레이드”이다. “내 공을 칠 수 있겠어”라는 자신감에서, “내가 슬라이더까지 섞는데 내 공을 칠 수 있겠어”라는 식으로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말이다. 올 시즌 임경완이나 우규민 등의 클로저가 넉아웃당할 때 많은 야구팬들은 “마무리는 역시 강속구”라는 명제를 다시금 떠올리곤 했었다. 바로 그 강속구 투수, 한기주가 위축될 이유는 없다. 아직 21세의 젊은 고졸 3년차 투수에게는 좌절할 시간보다는 발전할 시간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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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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