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s Baseball Note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Baseball Essay'에 해당하는 글(21)
2009.03.25   47 대신 51, 이상훈 대신 봉중근
2008.12.02   마포 종점, 그리고 강요받는 또 다른 종점들
2008.11.12   의리를 택한 김수경의 성공을 바라며
2008.11.01   김현수, "웃는 얼굴로 다시 보자!"
2008.10.14   김동주, 두산이 강한 이유!
2008.10.03   정현욱과 삼성의 "특별한 4강"
2008.09.22   박재홍, 때마침 그 자리에!
2008.09.15   정 작가의 다시 쓰는 "해피엔딩"
2008.09.08   최고용병 브룸바의 쓸쓸한 마무리 3
2008.08.20   한기주,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라!


47 대신 51, 이상훈 대신 봉중근

○.. No. 47 “추억”

그의 등번호는 47.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가 시원하게 공을 뿌렸다. 그의 왼팔에서 나오는 150km 언저리의 강속구는 구속 이상의 파워가 있었다. 칠 수 있으면 쳐보라는 식의 기(氣)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슬라이더나 커브도 잘 던졌지만, 그의 레파토리는 누가 뭐래도 직구였다. 복판에 꽂아버려도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직구.

그는 승부를 즐겼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야구가 단체경기라고 하지만 마운드에 선 투수의 파이팅은 팀 전체를 지배한다. 그가 마운드에 서면 동료들은 든든했고 상대팀은 주눅이 들었다. 줄무늬 유니폼, 흩날리는 긴머리, 등번호 47번의 “야생마” 이상훈이다.

이상훈이 일본과 미국을 거쳐 다시 LG로 돌아왔을 때, 냉정히 말해 그의 구위는 전성기에 미치지 못했다. 혈행장애로 많은 이닝을 던질 수도 없었거니와, 복판에 꽂아도 타자가 손도 못 대던 강속구의 볼끝은 전성기보다 무뎌져 있었음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고 미국에서 실패도 겪었지만, 그래도 그의 기(氣)는 여전했다. 여전히 타자와의 싸움을 즐겼고, 터프하게 위기를 막아냈다. 기가 실린 직구는 구속이 몇km 줄었어도 여전히 타자를 압도했고 경기를 지배했다.

이상훈이 감독과 프론트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팀을 떠난 뒤, LG 마운드에는 경기를 지배하는 투수가 없었다.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가 나오면 LG팬들은 “제2의 이상훈”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그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단지 공이 빠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자를 압도하는 기백,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배짱, 아무도 이상훈을 따라갈 수 없었다.

○.. No. 47 “도전”

이상훈이 팀을 떠난 후 3년이 흐르고 LG에는 다시 등번호 47번을 단 왼손 투수가 들어왔다.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으로 따지자면 이상훈의 “14타자 연속 K”를 능가하는 “거물”이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일찌감치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미국으로 진출했고, 그 대단한 커트 실링과 맞상대를 하면서도 씩씩하게 공을 뿌리던 청년이었다.

봉중근. 하지만 냉정히 말해 그는 미국에서 부상으로 인해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던 중이었다. 1회 WBC에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의 구위는 국내 리그에 뛰는 선수보다 뛰어날 것이 없었다.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는 대신 팀을 옮겨 다니기 시작하고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시간이 더 길어진 그 투수가 10억의 계약금을 받고 LG에 입단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국 물 먹던 선수인데 국내 리그에서 평균은 하겠지”라는 기대는 두어달 만에 무너졌다. 새로운 47번은 2군으로 밀려났다.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익힌 체인지업 유인구는 국내 타자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부상 이후 줄어든 구속으로는 타자를 윽박지를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티즌들은 그를 “봉미미”라고 불렀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용병 메존이 봉중근을 두고 “미미한 선수”라고 표현한 것이 발단이었다. “미미한 선수”라는 놀림을 받으며 2군에 내려간 봉중근이 1군에서 남긴 것은 안경현과의 격투극 뿐이었다.

○.. No. 47 “부활”

먹튀와 미미. 봉중근을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는 그의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모두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진 2군에서, 봉중근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국내 타자들을 전혀 유인하지 못했던 외곽 체인지업 대신 너클커브를 단련했다. 더 큰 변화는 자신감이었다. 외곽으로 도망 다니는 패턴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에서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구사하면서 정면승부가 늘어났다. 물론 그래도 많이 맞았다. 하지만 많이 맞더라도 정면승부를 시작했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겨울 훈련을 충실히 마치고 구속을 회복한 봉중근의 2008 시즌은 전년도와 전혀 딴판이었다. 자신감을 가지자 파이터 기질이 살아났다. 체인지업 너클커브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었지만 역시 주무기는 직구였다. 150km 언저리의 강속구를 복판에 꽂아 넣어도 타자들은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허약한 팀타선의 도움이 없어도 그는 의연했다. 허약한 불펜 사정 때문에 평균 투구수를 상회하는 경기가 잦아졌어도 불평은 없었다. 어느새 그는 경기를 지배할 줄 아는 파이터가 되어 있었고, 47번의 등번호는 비로소 제 주인을 만난 듯했다.

2008 시즌, 봉중근은 평균자책 2.66, WHIP 1.19의 수준급 투수가 되었다. 동료의 빈약한 지원 속에 11승에 그쳤지만, 평균자책과 WHIP은 김광현 류현진과 동급인, 그야말로 에이스였다. 동료의 빈약한 지원이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그는 불평하는 대신 기도를 했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근성, 47번의 원 주인이 떠난 뒤 LG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 No. 51 “변화”

47번이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났다고 LG 팬들이 안도할 즈음, 봉중근은 유니폼의 숫자를 51로 고쳐달았다. “제2의 이상훈”이 아닌, “제1의 봉중근”으로의 변신이다. 그런 봉중근이 자신의 새 등번호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공개한 것은 줄무늬 유니폼이 아닌, 적색과 청색의 대표팀 유니폼이었다. 3년 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섰던 WBC라는 무대.

당초 구상대로라면 봉중근의 역할은 불펜이었다. 선발은 김광현과 류현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새 봉중근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되었다. 믿었던 김광현마저 철저히 두들긴 일본의 강타선을 상대로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에이스는 봉중근이다.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꽂아 넣는 강속구, 승리를 향한 강한 집념과 근성, 마운드 위에 선 한 명의 투수가 뿜어내는 기(氣)는 어느새 경기를 지배했다. WBC 2연패를 위해 독하게 준비했다는 일본마저 눌러버린 에이스의 기백이다.

봉중근의 활약으로 제압한 일본을 미국 땅에서 다시 만났다. 또 봉중근이 선두에 섰고, 그는 다시 일본을 눌렀다. 조그마한 약점도 놓치지 않는 일본의 분석력도 무용지물이었다. 봉중근은 다시 직구를 꽂아 넣었고, 좌우로 기막히게 걸치며 포수 미트에 꽂히는 직구를 일본 타자들은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다. 다시 승리. 그리고 봉중근의 포효. 그렇게 대한민국은 다시 경기를 지배했고, 우리는 4강에 올랐다.

그 일본과 다시 만난 결승전. 아무리 봉중근이라고 해도 일본과 세 번이나 부딪히면 난타 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봉중근의 컨디션도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좌우를 걸치는 봉중근의 직구는 모두 구심이 외면했고, 봉중근은 자신의 주무기를 봉쇄당한 상태에서 일본의 강타선을 상대했다. 힘겹게 틀어막은 4이닝. 봉중근이 허용한 점수는 비자책 1점뿐이었다. 주무기가 없어도 어떻게든 잡고 만다는 집념이 가져온 최대한의 선전이었다.

○.. No. 51 “출발”

일본에 우승컵은 내주었지만 한국의 선전은 매우 눈부셨고, 실질적인 에이스로 힘든 십자가를 진 봉중근의 활약은 대단했다. 짧은 백일몽을 깬 지금, 이제부터는 다시 1년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봉중근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씩씩하게 오를 것이다. 그리고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강속구를 던질 것이고, 승리를 향한 집념은 경기를 지배할 것이다.

그의 등에 새겨진 번호가 47번이 아니라 51번이라고 해서 아쉬울 것은 없다. LG 팬들은 47번 대신 51번, 이상훈 대신 봉중근을 가진 것이므로. 추억 위에 새롭게 오버랩되는 또 하나의 드라마가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미미한 선수”가 아닌,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우뚝 서 있다.



마포 종점, 그리고 강요받는 또 다른 종점들

시즌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스토브 리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토브(stove), 즉 난로에 앉아서 따뜻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할 시기, 그러나 항상 이맘때는 “스토브”의 훈훈함과 거리가 먼 칼바람이 몰아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누군가는 방출되어 더 이상 선수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누군가는 강제로 은퇴로 떠밀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 스토브 리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진영 정성훈 홍성흔 등의 FA 이적이 전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음지에서 조용히 선수생활의 벼랑으로 몰린 선수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출발은 마해영이었다. LG에서 방출된 후 고향팀 롯데에 입단해 마지막 선수생활의 의지를 불살랐으나, 2008 시즌 32경기에서 고작 0.153의 초라한 타율과 단 2개의 홈런만 기록한 채 시즌의 절반 이상을 2군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방출 통보였다.

롯데는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 옛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코치연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정된 코치직도 선수생활의 의지가 강한 선수에게는 섭섭한 대우일 뿐이다. 선수생활의 욕심이 남은 마해영은 이것을 거절하고 대만 리그 입단을 타진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는 은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찾아온 “마포 종점”. 마해영은 자신이 거절한 코치직 대신 해설자 자리에 도전하려는 듯싶다.

마해영의 팀동료 염종석은 조금 더 안타깝다. 마해영이 2008 시즌 성적이 부진했다면, 염종석은 부상 후유증을 극복한 선수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21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평균자책 3.52를 기록하며 홀드 3개를 올렸다. 롯데의 투수진이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형편없는 기록은 분명 아니다. 게다가 염종석은 통산 93승을 기록 중이다. 단 7승만 더 보태면 100승이라는 상징적인 성취를 올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롯데는 염종석의 선수생활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고, 타팀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염종석은 결국 은퇴를 택해 영원한 “롯데 맨”으로 남는 쪽을 택했다.

마해영과 염종석의 강제적인 은퇴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두 선수는 롯데의 투타에 있어서 전성기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염종석은 1992년 롯데 우승의 1등 공신인 동시에, 우승을 위한 짐을 혼자 짊어진 신인의 굴레로 오랜 기간 동안 부상에 시달려야 했던 선수이다. 마해영은 지금도 롯데 팬들이 가장 화끈한 중심타선으로 기억하는 기둥이다. 비록 마해영이 우승반지는 삼성에서 끼게 되었지만, 롯데가 2000년을 전후로 화끈하게 불타오르던 시절에는 임수혁과 박정태-호세를 거느린 마해영이 중심에 있었다.

전성기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선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그라운드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구단에서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이들처럼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연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연봉 대비 팀 공헌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젊은 유망주의 출장기회를 빼앗는다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신인 선수는 계속 들어오는데 고참이 은퇴하지 않으면 한정된 엔트리를 채우기 버겁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해영과 염종석 정도의 고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고 본다. 이들은 팀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팀의 팬들을 결속시키는 아이콘이다. 코치와는 또 다른 위치에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줄 멘토이며, 유망주의 롤 모델이 될 주춧돌이기도 하다. 팀의 영광의 순간에 중심이 된 선수들이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런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있다. 그런 고참을 강제적으로 은퇴시킨다면 후배들은 무엇을 배울까? 자신이 팀에 헌신해봐야 강제로 그라운드에서 끌어내려질 것이라 지레 겁먹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뒤안길은 비단 롯데의 문제만이 아니다. 올 스토브 리그에서 롯데 못지않게 팬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며 고참을 정리한 팀이 두산이다. 그 대상은 안경현. 이미 작년부터 동계훈련에 제외되며 팀의 전력외 선수로 분류되더니, 결국 방출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 본인의 선수생활 연장의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안경현의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도 높다. 1992년부터 17년간 OB-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두 번의 우승반지를 끼었던 선수치고 너무도 쓸쓸한 퇴장 아닌가.

안경현은 성실함과 꾸준함을 갖춘 선수가 오랫동안 제몫을 하며 팀에 보이지 않게 공헌하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3루수가 필요하면 3루에, 2루수가 필요하면 2루에, 1루수가 필요하면 1루에 섰다. 2006년 김동주의 부상으로 4번타자 공백이 생기자 실질적인 4번타자가 되어준 것도 안경현이었다. 늘 두산에 구멍이 생기면 그것을 메워준 것이 안경현이었고, 그것이 17년 동안의 선수생활 동안 통산타율 0.275의 준수한 성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런 안경현도 결국 두산을 떠났다. 홍성흔의 롯데 이적으로 우타자의 공백을 염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재원과 최준석이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해 확고한 1루수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안경현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렇게 두산 팬들은 또 하나의 추억을 박탈당했다. 이제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안경현의 모습은 그저 사진과 옛 동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비슷한 예로 이종범을 꼽을 수 있다는 점도 서글프다. 이종범이 누구인가? 한국야구를 대표했던 스타 중의 스타이다. 모그룹의 형편이 어려워져 팀 운영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선동열과 이종범 덕분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종범의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8 시즌 110경기에서 0.284의 타율로 후배들보다 못하지 않는 성적을 거두었고, 무엇보다 기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파이팅이 인상적이었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시즌 초 최하위를 헤매던 KIA가 한때 4강을 넘볼 정도로 치고 올라갈 때, 그 신바람의 동력이 이종범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런 이종범도 사실상 은퇴를 강요받고 있는 지경이다. 옵션을 걸어, 내년에 옵션을 달성하지 못하면 은퇴하는 것에 합의하라는 굴욕적인 대우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앞서 언급했듯, 결국 프로의 생리는 최대효과를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고참들을 정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도 있다. 혹자는 눈치 주기 전에 고참들이 알아서 물러서는 용단을 내리는 것이 미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한화를 예로 들며 “노인정”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한화가 꾸준히 4강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과연 류현진과 김태균 등 젊은 선수들만의 힘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최근 몇 년간을 보면, 장기간의 리그가 진행되는 도중 위기가 찾아왔을 때 어지간해서는 어느 선 이하까지 떨어지지 않는 팀이 한화와 삼성이었다. 하필 두 팀에 고참이 가장 많다는 것이 단지 우연일까?

고참의 힘을 우습게 봤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른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LG이다. 팀의 레전드라 할 수 있는 김용수의 쓸쓸한 은퇴는 어떠했는가? 1998년 선발로 18승을 거두고, 1999년 마무리로 26세이브를 기록한 선수가, 단지 2000년에 부진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이 어렵다고 보고 강제로 은퇴를 시켜버렸다. 등번호(41)만큼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던 김용수의 바램은, 결국 만 40세의 문턱에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사실상 김용수의 은퇴경기나 다름없던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당시 중간계투로 나와 호투하던 김용수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강판 당하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내려가기 싫다고 강한 집착을 보였으나 결국 신예 마무리 장문석에게 마운드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드라마의 연출이었다.

LG는 이후에도 고참 선수들이 줄줄이 강제로 팀을 떠났다. 팀의 전성기를 지킨 김용수뿐 아니라 이상훈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은 모두 팀과의 결별이 깔끔하지 못했다. 그러던 사이 그렇게 고참을 밀어내고 기회를 얻은 LG의 무수한 유망주 중 살아남은 이는 이승호 이병규 박용택 정도뿐이다. 그마저 이승호와 이병규는 지금 LG에 없고, 박용택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유망주가 보고 배울 고참이 없었고, 팀이 가장 강력했던 시절의 캐미스트리를 간직한 주춧돌이 모두 빠졌던 결과이다. 8개구단 중 가장 오랫동안 가을야구를 해보지 못한 팀이 LG라는 점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작년 스토브 리그에서도 삼성의 김한수나 롯데의 주형광 등 팀의 영광을 간직한 고참들이 반강제적으로 옷을 벗었다. 두 선수 모두 팀의 전성기의 중심이었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주형광은 부상 때문에 기량이 많이 쇠하였으나, 김한수는 여전히 수비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라는 압박을 받곤 했다. 그들이 그렇게 “종점”에 도달했듯이, 올 해도 마해영 염종석 안경현 이종범 등 많은 선수들이 “종점”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종점”이 과연 팀에게, 젊은 후배에게, 또 팬들에게 좋은 것인지, 구단들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리를 택한 김수경의 성공을 바라며

2008 시즌이 한국시리즈까지 끝나고 난 후, 야구팬의 관심을 모았던 이슈중 하나가 바로 FA이다. 매년마다 누가 FA 자격을 얻을지, 그리고 누가 FA로 팀을 옮길지, 그리고 누가 얼마의 몸값을 받게 될지, 보상선수는 누가 이동할지 등등, FA와 관련된 이슈는 끝없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올 해는 자격을 취득한 27명의 FA 중 손민한 박진만 같은 대스타와 이진영 정성훈 등 젊은 스타급 선수들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어 더욱 뜨거운 스토브리그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27명의 FA 자격취득 선수 중 11명이 권리행사를 신청했다. 한 마디로 시장에 나온 것이다. 그 중에는 해외진출이 유력한 선수도 있고, 어지간해서는 타팀 이적이 어려울 것 같은 노장도 있다. 하지만 그들보다도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있는 이름”이 아니라 “없는 이름”이었다. 투수보다 야수가 많은 올 해 FA의 상황 속에서 가장 눈에 띄던 선발투수, 바로 김수경이 그 주인공이다.

김수경은 올 해 FA 권리행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냥 소속팀인 히어로즈에 남아 재계약을 하겠다는 뜻이다. 비록 큰 부상 전력이 있고 올 해 부상 후유증으로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김수경이다. 고졸신인으로 입단하자마자 첫 해인 1998년 12승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정민태 임선동과 함께 18승으로 공동 다승왕까지 오르며 완전한 리그 톱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던, 그리고 비록 부상 때문에 부침이 있었지만 유니콘스에서 10시즌동안 일곱 번이나 두 자리 승수를 기록했던 바로 그 김수경 말이다.

수요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투수진이 구멍난 LG는 공개적으로 FA 김수경 영입을 선언하기도 했다. “부자 구단”이 경쟁에 뛰어들겠다는데 히어로즈가 경쟁이 될 리가 없었다. 2000년 다승왕 이후 부상 때문에 평균자책이나 탈삼진 능력은 점차 하향곡선을 그렸지만, 그래도 부상을 딛고 작년부터 부활의 가능성을 보였던 그다. 올 해도 시즌 초에는 부상으로 인해 이탈했지만, 후반기에는 6경기에서 평균자책 1.70의 완전히 부활한 모습으로 돌아왔기에 “FA 대박”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김수경 개인에게 있어서도 FA는 묘하게 인연이 없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을 것으로 보였다. 그는 2006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그 해 성적이 좋지 못했고 유니콘스도 김재박 감독의 이적과 모기업 지원 중단 등으로 뒤숭숭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FA 권리행사를 스스로 포기했다. 한 해 미룬 FA는 2007 시즌이 끝난 뒤에도 순탄치 못했다. 유니콘스가 히어로즈로 넘어가면서 FA 자격이 완전히 백지화된 것이다. 대박은 고사하고 연봉까지 삭감 당했고 겨우내 다른 고참급 선수들과 함께 죄인이라도 된 듯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다시 찾은 FA를, 김수경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왜? 바로 김시진 신임감독 때문이다. 유니콘스 시절 투수코치로 자신을 길러준 은사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령탑에 올랐는데, 주축 선수가 되어야 할 자신이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은 의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히어로즈가 올 해부터는 연봉 협상 시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겠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 상태에서 예고된 대박을 포기하고 잔류를 선언한 김수경의 “의리”는 분명 시선을 모으기 충분하다.

김수경까지 잔류를 선언했으니, 히어로즈는 검증된 장원삼 마일영 좌완 듀오에 황두성과 이현승, 그리고 상무에서 영점을 다시 조정한 오재영까지 더해 어느 팀에 꿇리지 않을 선발진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팀 전력은 과거 유니콘스의 명성을 재현하기 부족해 보이지만, 투수력을 바탕으로 왕좌에 오른 유니콘스의 주역들이 히어로즈에서 뭉친다면 하위권에 머물 전력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된다. 게다가 유니콘스의 전성기를 이끈 아이콘 정민태도 히어로즈의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김시진 정민태 그리고 김수경까지, 2000년대 초 다른 팀에게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던 유니콘스 투수진의 주축이 뭉친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상당하다.

김수경이 올 겨울 1년 계약을 할지 다년 계약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년 계약을 금지하는 KBO의 수칙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단장들의 결의가 실현된다면 김수경은 내년에 다시 한 번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9 시즌에 팀을 멋들어지게 끌어올린다면 김수경은 내년에 다시 한 번 홀가분하게 “대박”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동안 인연이 없었던, 그리고 “의리” 때문에 스스로 인연을 포기했던, FA와의 인연이 내년에는 좋은 소식으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돈을 무시할 수 없는 프로의 세계에서 돈 대신 의리를 택한 젊은 청년이 근사하게 성공하는 해피엔딩까지는 보여주어야, 이런 세상도 조금은 더 살 맛 나는 것 아니겠는가.



김현수, "웃는 얼굴로 다시 보자!"

김병현의 전성기는 2001년부터 시작했다. 입단하자마자 무섭게 메이저리그로 승격돼 팀의 주전 불펜으로 자리를 잡더니, 결국 3년차인 2001년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가 되어 포스트시즌이 뒷문을 담당하는 경지에 오른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등판한 영광도 김병현의 몫이었다. 그 해 김병현의 기록은 5승 6패 19세이브, 2.94의 평균자책과 1.04의 WHIP으로 매우 뛰어났다. 특히나 무시무시했던 것이 그의 탈삼진. 2000년에 무려 14.14의 K/9(9이닝 당 삼진)을 기록하더니, 2001년에도 10.38의 K/9로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줄줄이 돌려세웠다.

거칠 것 없던 22세의 젊은 청년에게 포스트시즌의 중압감은 없어보였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한 번 등판해 세이브를 올리며 감을 조율하거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세 번 등판해 5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 허용하는 완벽한 투구로 세이브 2개를 더 챙긴 것이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큰 경기에서도 강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김병현은 거대한 상대 양키즈를 상대로 다시 마무리로 오른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기억하던 그것이다. 4차전 9회말 2아웃 이후에 동점 투런 홈런, 10회말 2아웃에서 끝내기 역전 홈런을 맞고 패전. 5차전 9회말 2아웃 이후에 다시 동점 솔로 홈런. 그리고 김병현은 끝내 마운드에서 주저앉았다. 당차고 배짱 좋기로 유명한 강심장 선수가 마운드에서 주저앉다니, 그 정도로 월드시리즈의 악몽은 김병현에게도 컸던 셈이다.

물론 김병현이 여기서 주저앉았다면 아마 지금쯤 국내에서 공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병현은 다시 일어섰고, 2002년에도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로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8승 3패 36세이브. 그리고 평균자책 2.04. 이 정도 기록이면 누구도 클로저로서의 자질에 이의를 달지 못한다. 23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정상급 클로저의 대열에 오른 것이다. (하필, 그 이듬해부터 선발 외도와 부상, 그리고 저니맨 생활로 급격한 내리막을 걷게 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김병현을 마운드에 주저앉게 했던 얄궂은 운명의 여신은 2008년 한국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찬 모습으로 리그를 점령해버린 젊은 선수가, 포스트시즌에서마저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에서 극적으로 무릎을 꿇게 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두산의 김현수. 신고선수로 입단해 2년차밖에 되지 않은 20살의 젊은 선수가 타격왕에 오르고, 국가대표에 뽑혀 금메달을 따고,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포스트시즌에 서기까지, 김현수의 올 시즌은 흠잡을 곳 없는 완벽 그 자체였다.

김현수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타율 0.357로 1위, 출루율 0.454로 1위, 최다안타 168개로 1위, 그렇게 타격부문 3관왕. 장타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34개의 2루타(1위)와 5개의 3루타(3위)를 앞세워 전체 두 번째로 높은 0.963의 OPS를 기록. 득점 4위(83개), 타점 5위(89개)로 전형적인 3번타자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13개의 도루로 주력도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까다로운 타자가 선구안까지 좋으니 볼넷은 전체 1위(80개), 반면 삼진은 40개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과 엇비슷한 볼넷을 얻은 팀 동료 고영민의 삼진이 무려 109개였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대 투수들에게는 골치 아픈 선구안인 셈이다.

기록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김현수의 수비 능력도 평균 이상이었다. 펜스에 부딪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허슬 수비는 그의 옆에 있는 이종욱에 뒤지지 않아 과연 두산의 일원다웠고, 수비 범위도 넓어 8개 구단 주전 좌익수 중 가장 많은 2.16의 수비범위(Range Factor; 9이닝 기준으로 수비에 가담한 횟수)를 기록했다.

이런 성적을 토대로, 김현수는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국가대표 멤버로 참석한다. 이종욱 이용규 이택근 이진영 등 쟁쟁한 선배들이 외야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니 김현수는 대타 요원 정도로 생각되었고, 실제로 출발은 그러했다. 그러나 김현수는 대타로서도 만점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실력이 절대 요행이 아님을 증명했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특급 마무리 이와세를 상대로 적시타를 날리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던 모습은 김현수의 타격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었다.

김현수는 타석에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의 구질이나 코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투구를 그냥 맞출 뿐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그만큼 순간적인 판단력과 배트 컨트롤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그렇다고 배트 끝만 조율하며 “똑딱이 안타”를 만들어내는 유형도 아니다. 홈런은 9개에 그쳤으나 OPS 2위에 오를 정도의 장타력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수비를 펼칠 수도 없다. 그러니 투수들은 골치가 아프다. 집중적으로 공략할 약점이 없기 때문이다.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타구가 날아가기 때문에 수비 시프트를 쓰기도 애매하다. 이토록 감각적으로 타격을 하는 천재적 모습에 장효조를 비교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김현수가 이 모습 그대로 몇 년의 경력을 더 쌓는다면 불가능도 아니라고 본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강팀 일본의 최고 투수를 상대로 해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김현수에게 포스트시즌의 중압감이 따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김현수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상대로 0.333의 고타율과 고비마다 터진 적시타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올 시즌 상대 7개 구단 중 히어로즈 다음으로 성적이 신통치 못했던 상대팀이 삼성이었는데, 그 벽을 넘어선 것이다. 정상에서 맞붙게 된 상대 SK에게는 상대타율 0.382로 아주 강했다. 당연히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키플레이어는 김현수였다. 이종욱과 김동주의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을 김현수만 제 몫을 해주며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거짓말 같았다. 21타수 1안타, 0.048이라는 초라한 타율. 1차전에서 안타 1개를 때린 뒤에는 계속 침묵이었다. 특히 한 점차로 뒤지던 9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병살로 게임을 마감했던 3차전은 불길한 징조가 본격화되는 신호였다. 잘 맞춘 타구는 아니었으나 코스가 좋았기 때문에 역전타가 될 수도 있었는데, SK의 기막힌 시프트에 걸려 병살로 마감한 것이다. 4차전에서도 김현수의 타구는 번번이 3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1승 1패에서 자신의 병살타로 시리즈가 열세에 놓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미 김현수는 자신만의 장점인 “무심”을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1승 3패로 시리즈 패배 직전에 놓인 5차전. 두 점을 뒤진 두산은 다시 한 번 9회말에 만루 찬스를 잡았다. 스퀴즈라도 시도해볼 법 했는데 김경문 감독은 끝내 강공을 고집했고, 그 덕분에 다시 한 번 3차전과 똑같은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 김현수가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정대현에서 채병용으로 바뀌었지만 모든 상황은 3차전과 거짓말처럼 똑같았다. 그리고 이미 김현수의 얼굴은 “무심”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급했을까? 또 한 번 초구를 건드린 김현수의 타구는 투수 글러브에 들어갔고, 1-2-3 병살타로 SK의 우승은 결정되었다.

김현수가 올 시즌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갔던 적은 꽤 많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공이 들어오면 초구라도 바로 방망이를 내는 타입이다. 올 시즌 두산의 주전급 타자 중 한 타석에서 평균적으로 상대하는 투구수가 김현수보다 적은 타자는 채상병 최승환 홍성흔 뿐이다. 그런데 그 정도로 빠른 승부를 즐기는 김현수도 아무 때나 방망이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올 시즌 18번의 만루 상황에서 김현수가 초구를 공략한 것은 단 6번뿐. 그랬던 김현수가 연거푸 초구를 건드려 병살로 물러난 것은 분명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되었을 텐데, 뜬공만 날려도 1점은 쫓아가 역전을 노릴 수 있었을 텐데, 다시 한 번 거짓말 같은 병살타로 무너진 김현수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올림픽에서도 굳건했던 20세의 젊은 선수에게도 한국시리즈 무대는 너무 큰 짐이었던 모양이다.

마운드에서 주저앉은 김병현처럼,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눈물을 쏟은 김현수의 뒷모습은 상당히 안타까웠다. 3년차의 젊은 이방인 투수가 리그를 호령하다가 극적으로 고개를 떨구었듯, 2년차의 젊은 신고선수 출신의 타자가 리그를 호령하다가 극적으로 눈물을 쏟은 모습은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진 것이다. 당시 경기장을 찾았던 관객들의 전언에 의하면, 김현수는 끝내 시상식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준우승도 값진 것인데, 그 영광의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할 정도로 김현수의 마음의 상처는 크게 남은 모양이다.

그러나 김병현이 상처를 딛고 2002년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더 성장했듯, 김현수도 상처를 딛고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김현수는 국내 최고의 좌타자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선수이다. 자신이 마음먹으면 홈런도 더 때릴 수 있고 도루도 더 할 수 있는, 게다가 정확도와 수비 능력까지 갖춘, 완성된 “5툴”에 가장 가까운 선수 중 하나가 김현수이다. 김동주의 해외진출과 홍성흔의 FA를 걱정해야 할 두산이 만약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고 하면, 결국 팀타선의 중심이 되어야 할 사람은 김현수이다. 그러니 그가 상처를 딛고 한 단계 더 성장해서 돌아온다면 상대팀에게는 그야말로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다. 그에게는 앞으로 써내려갈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러니, "내년엔 웃는 얼굴로 다시 보자!"



김동주, 두산이 강한 이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선취점을 뽑은 팀이 경기에 이길 확률이 높다. 이것은 테이블세터와 중심타선의 역할분담이 중요시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령, 한 경기에 9번의 공격을 하면서 선두타자로 나오는 선수는 1번타자일 수도 있고 8번타자일 수도 있다. 9번의 공격 중 찬스를 해결해줄 선수가 4번타자일 수도 있고 9번타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회는 1번타자부터 시작한다는 것이고, 1회에 찬스를 잡으면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4번타자라는 점이다. 그러니 출루율 높은 테이블세터와 해결사 자질이 있는 중심타선은 모든 팀에 꼭 필요하다.

선취점이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통계를 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올 시즌 경기에서 선취점을 뽑은 팀이 승리할 확률은 무려 0.687(344승 157패). 1위 SK의 승률보다도 높다. 그러니 과장을 보태 정리하면, 한 팀이 126경기 전 경기에서 선취점을 뽑는다면 1위도 할 수 있다는 소리이다. 최하위 LG도 선취점을 뽑은 경기에서는 0.564의 승률을 기록했다. 선취점을 뽑은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기보다 높다는 것의 확실한 반증이다.

<선취점에 따른 8개구단의 승률>

올 시즌 두산이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2위에 오른 “미라클”을 보여준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선취점이다. 두산이 선취점을 뽑은 경기는 73경기. 1위 SK와 똑같이 8개구단 중 가장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두산은 선취점을 뽑은 경기에서 0.671의 승률을 기록했으니, 시즌 승률 0.556보다 월등히 높은 전적이다. 여기에는 8개구단 중 가장 우수한 테이블 세터를 보유한 구단이라는 점의 메리트보다도 확실한 해결사 김동주의 존재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8개구단의 이닝별 득점현황>

두산은 올 시즌 647점의 득점을 올리는 중에 1회에만 118개의 득점을 쓸어 담았다. 126경기에서 118점을 올린 것은 한 경기 평균 0.94점, 즉, 어지간한 경기는 1회에 한 점씩 얻고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1회에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롯데(83점)보다도 무려 35점이 더 많고, 하위팀인 히어로즈(55점)나 LG(50점)보다는 두 배 이상 많은 점수이다. 팀의 총 득점 중 1회에 뽑은 점수의 비중만 18%. 하여튼, 대단한 기선제압이다.

김동주가 대단한 것은, 1회에 118점의 점수를 뽑을 때 김동주 혼자서만 40개의 타점을 올렸다는 점이다. (40 타점은 이현곤의 시즌 타점과 같은 숫자이다. 김동주가 1회만 뛰었어도 그는 타점 40걸 안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올 시즌 김동주의 시즌 타율이 0.309, OPS가 0.916인데, 1회에 타석에 들어선 것만 따로 뽑아 계산하면 타율 0.379, OPS 1.040의 무시무시한 성적이 나온다. 그 뿐인가. 1회에 득점권 상황일 때 타석에 들어선 것만 계산하면 타율 0.422, OPS 1.100까지 올라간다. 즉, 두산은 1회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4할 타자가 차곡차곡 점수를 쓸어 담아주었다는 뜻이다.

<두산 주요선수들의 1회 타점>

<두산 주요선수들의 1회 득점권 타점>

김동주와 함께 두산의 중심타선을 구성하는 김현수와 홍성흔도 물론 1회에 매서운 공격력을 보여주었으나, 김동주에 비하면 확실히 약하다. 김현수의 경우 3번타자로 출전한 경기에서 1회에 득점권 상황이 타석에 들어서면 타율이 0.269로 떨어진다. 타점은 단 4개뿐. 홍성흔은 1회에만 22타점을 올리며 만만치 않은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1회의 득점권타율은 0.314로 팀 평균(0.344)보다 조금 못하다. 즉,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의 중심, 김동주의 가공할 방망이가 두산의 선취점의 중심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차곡차곡 타점을 올리며, 김동주는 올 시즌 104 타점으로 가르시아에 이어 타점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니, 두산의 입장에서는 김동주 없이 시작할 뻔했던 올 시즌이 위험천만했던 셈이다. 일본 진출이 기정사실화되면서 FA 협상도 성의 없이 끝낸 데다가, 일본 진출 불발 후에도 1년 계약만 맺으며 두산에 큰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여론도 다소 부정적으로 흘렀었다. 게다가 잔부상이 많기 때문에 결장이나 교체아웃이 많은 편이라 4번타자로서의 위압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도 많다. 일찌감치 교체되는 날이 많다는 것은 경기 막판 해결사가 필요한 시급한 순간에 벤치에 앉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팀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올 해 7회 이후에 김동주의 타석은 126번인데 이것은 백업멤버 오재원의 119번과 거의 비슷하다.

<두산 주요선수들의 7회 이후 타석>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김동주는 김동주다. 가령, 올 해 363 타수를 기록한 김동주가 타점 1위 가르시아와 똑같은 460 타수를 기록했다면, 그의 타점은 산술적으로 130점을 훌쩍 넘는다. 무려 53개의 홈런을 날리며 문자 그대로 “사기 유닛”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2003년의 심정수가 460 타수에서 142 타점을 올렸었으니, 올 해 김동주의 활약도 말하자면 “준 사기 유닛” 정도의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올 해 김동주가 기록한 104 타점은, 그의 개인 커리어에서도 “우동수 트리오”의 전성기를 누린 2000년의 106 타점 이후 두 번째로 많은 타점이다.

아마 김동주는 올 해가 끝나면 다시 일본리그의 문을 두드릴 것 같다. 클러치 능력을 갖춘 교타자에 수비력도 평균 이상인데다 10년 가까이 꾸준한 정상급 성적을 보여준 데다가 올림픽 금메달 팀의 중심타자이니, 일본에서도 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건이 맞아 일본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두산으로서는 커다란 공백이 생기게 되는 셈. 공교롭게도 김동주가 부상 때문에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2006년, 두산은 4강에 들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2006년부터 “포스트 김동주”로 계속 테스트했던 최준석이 아직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두산으로서는 김동주의 공백은 단지 중심타자 한 명의 공백 이상의 큰 구멍이 될 것이 분명하다.

두산은 항상 시즌이 시작하기 전 전문가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곤 했다. 그러나 그런 전문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 2년 연속 2위에 랭크된 괴력을 보여주었다. 이종욱 김현수 고영민 등 젊은 타자들이 속속 포텐셜을 터뜨리면서 전력의 빈틈을 메워준 덕분이었지만, 그것도 김동주라는 거대한 기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타선에 거대한 기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유망주가 포텐셜을 터뜨리는 것은 큰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두산의 입장에서는 올 겨울 김동주를 잡지 못하면 내년에 또 한 번 큰 구멍을 안고 시즌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내년에도 다시 한 번 “미라클”을 연출한다면, 그 때는 두산이라는 팀이 진정한 강팀이 될 것이고, 만약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김동주의 존재감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다.



-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



정현욱과 삼성의 "특별한 4강"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은 삼성 라이온즈. 이러쿵 저러쿵 해도 분명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팀을 고를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될 이름이다. 27년째를 맞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4위 아래로 떨어진 것이 단 3번뿐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흔히 삼성을 떠올리면 아무리 못해도 평균 이상은 하는 강팀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올 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을 확정지은 것이 삼성에게 특별히 의의를 부여할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 시즌 삼성의 4강은 꽤 특별했다. 시즌의 6부능선을 넘을 때쯤까지만 해도, 심지어 팀내에서조차 4강이 힘들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외국인 선수를 모두 퇴출시키는 특단의 리빌딩 조치를 취할 정도로, 올 시즌 삼성은 꽤 힘든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한화의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5위에서 4위로 올라설 수 있었고, 그렇게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의 시즌 중반 부진은 올 해로 5년째를 맞은 선동열 야구의 한계를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동열 야구의 특징은, 선발보다도 훨씬 강한 불펜을 앞세워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지키는 야구”로 요약된다. 우리가 흔히 선발투수나 마무리투수에 들지 못하는 투수들을 미들맨으로 활용하고는 하는데, 삼성의 경우에는 중간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는 투수가 선발이나 2군으로 쫓겨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곤 할 정도였다. 뒷문이 튼튼해 한 점차 승부에서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저력을 보유한 강팀이었음은 분명하지만, 한 편으로는 “재미없는 야구”라는 오명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올 시즌, 삼성의 투수진이 예년만 못한 것은 기록상으로도 확인된다.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투수코치로 부임한 후 즉시 3점대로 떨어진 팀 평균자책은 이후 쭉 3점대를 유지하다가 올 시즌 다시 4점대로 치솟고 말았다. 0.250 내외를 유지하던 피안타율도 0.275까지 훌쩍 높아졌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을까? 최근 4년간 삼성의 팀 평균자책 속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올 시즌 삼성의 팀 평균자책은 선발투수진의 붕괴의 영향이 크다. 5.23의 선발 평균자책은 8개구단 중 최하위. 심지어 올 해 최악의 시즌을 보낸 LG의 선발 평균자책(5.09)보다도 크게 떨어진다. 오버뮬러, 션, 애니스 등 용병 투수의 활약이 시원치 않았고, 에이스 배영수도 아직 부상 후유증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4~5선발로 꾸준히 제몫을 해준 전병호도 부진하면서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버린 탓이다. 시즌초 “보험용”으로 이상목 조진호를 영입해두지 않았으면 5인 로테이션을 꾸리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그 와중에 불펜은 여전히 제몫을 했다. 하긴, 최고 마무리 오승환을 비롯해 3년동안 리그 정상급으로 던져준 불펜투수들이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지키는 야구”의 핵심은 마무리 투수가 아니라 미들맨이다. 5~6회부터 투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선동열 감독의 특성상, 2~3이닝을 잘 막아서 오승환에게 연결해줄 투수의 존재가 필수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 역할을 해준 선수들이 이른바 “쌍권총” 권오준과 권혁이다. 다른 팀에 가면 모두 마무리투수로 한 자리씩 차지할 정도의 구위를 가진 선수들이, 그것도 둘씩이나 중간에서 막아주니 삼성의 뒷문이 튼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두 선수가 잦은 등판의 후유증으로 작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6년 홀드 1위 권오준은, 올 해 고작 16.2 이닝만을 던지며 평균자책 4.32의 부진한 모습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이다. 권오준이 작년부터 제 몫을 하지 못하자 삼성 불펜의 핵으로 부상한 2007년 홀드 3위의 권혁은, 평균자책 1.32로 표면적으로는 작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WHIP과 IRS(승계주자실점) 모두 작년보다 못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출장횟수와 평균 투구이닝도 작년만하지 못한 이유, 권혁 역시 권오준처럼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올림픽 예선과 본선 대표팀에 들락날락하면서 더 에너지를 소비한 탓이다.

선발진은 붕괴되었고, 불펜의 핵인 “쌍권총”까지 흔들렸다. 그래도 삼성은 올 해 불펜진의 평균자책은 전체 3위에 해당하는 3.48. 그 위의 두 팀이 SK와 두산이라면 삼성의 불펜은 확실히 기대 이상의 제몫을 한 셈이다. 선동열 야구가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이라 정리해도 무리가 아닐 텐데, 올 해 선동열 야구의 자존심을 살려준 마지막 보루, 그가 바로 정현욱이다.

평균자책 3.43, WHIP 1.29에 10승 4패 10홀드. 기록상으로 보면 괜찮은 활약은 했지만, 그렇다고 팀 불펜의 핵이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정현욱의 올 해 활약은 스탯을 좀 더 들여다 보아야 한다. 구원으로 등판한 45경기에서 90.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2.58. IRS가 10/28로 다소 높기는 하지만 구원 등판 시 WHIP 1.11에 피안타율 0.217에서 알 수 있듯 타자들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었다. 특히 구원투수가 한 번 등판할 때마다 평균 2이닝을 던지면서 90이닝을 넘겼다는 것은 요즘 프로야구에서 보기 어려운 “혹사”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정현욱은 선발진의 구멍을 메우기 어려울 때 선발로도 등판해야 했다. 선발 등판이 총 7차례. 물론 선발 등판 시에는 평균자책 5.60에 WHIP 1.73으로 부진한 모습이었으나, 그래도 선동열 감독은 정현욱이 평균 5이닝 이상을 던지게 했다. 올 해 삼성에서 선발로 한 차례라도 등판한 투수들의 평균 투구이닝을 따지면 정현욱은 이상목 윤성환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선발이 조금만 부진해도 바로 교체해버리는 선동열 감독의 특성상, 평균자책 5.60의 선발투수가 평균 5이닝 이상을 던지게 한 것은 조금 의아스럽기도 한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정현욱이 없는 불펜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발까지 합친 정현욱의 총 투구이닝은 126이닝. 불펜투수가 규정 이닝을 채워버린 것이다!)

정현욱에 대한 선동열 감독의 신뢰는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지키는 투수”를 확인해보아도 쉽게 드러난다. 올 해 삼성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구원투수만 살펴보면, 정현욱은 55이닝을 투구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클로저 오승환을 뺀 불펜 중에서 정현욱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맡은 투수는 24.1이닝의 권혁. 올 해 50경기에 구원 등판해 65.2이닝을 던진 안지만은, 리드 상황에서는 20이닝만을 던졌을 뿐이다. 이런 점만 보아도 선동열 감독이 특유의 “지키는 야구”의 핵으로 정현욱을 활용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현욱이 버텨준 덕분에 다시금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삼성. 삼성의 이번 4강이 더 특별한 이유는, 이러는 과정에서 타선의 리빌딩까지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리빌딩 기간에는 팀의 전력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삼성은 대대적인 리빌딩 과정에서도 결국 4강을 이루어내며 강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어이 4강의 문턱을 밟았기 때문에 리빌딩의 주역들은 더욱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노쇠한 타선”을 확 물갈이한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우동균 등 젊은 주역들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의 “특별한 4강”을 이끈 정현욱에게도 넘어야 할 과제는 있다. 선발이 약한 삼성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는 포스트시즌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자연히 정현욱에게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현욱은 올 해 하위팀인 LG KIA 히어로즈에게 유독 강했던 반면, SK와 롯데전에서는 다소 부진했었다. 구원등판만 놓고 보더라도, 준플레이오프 상대인 롯데전의 평균자책이 5.40이다. 롯데와 두산을 넘어 SK까지 상대하려면 좀 더 버겁다. SK전 구원등판 시 평균자책 4.15, WHIP 1.77, 피안타율은 0.340까지 치솟는다.

2007년 군 제대 후 작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올 시즌 당당히 팀의 중심으로 거듭난 정현욱. 삼성의 김응용 사장은 정현욱을 보면서 “작살내는 피처”라고 표현했었다고 한다. 군 공백을 빼더라도 여덟 시즌을 보내고 있는 30살의 이 투수가 포스트시즌의 중압감마저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거둔다면, 타선의 리빌딩을 마치고 “쌍권총”의 부활을 기다리는 내년 삼성의 전력에 커다란 열쇠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


박재홍, 때마침 그 자리에!

SK 와이번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작년에 이어 2연패. 매직넘버 0가 된 지금 2위권과의 승차는 무려 11.5게임. 한 때 7할 승률에 육박하기도 했던 이 무시무시한 팀의 현재 승률은 0.675이다(77승 37패).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3연전을 할 때 꼭 산술적으로 2승 1패 이상은 했다는 뜻으로, 어느 팀과 붙어도 우세를 점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SK는 올 해 전구단을 상대로 우세를 보였으며, 하위권(6~8위) 팀을 상대로는 8할에 육박하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토록 “적수가 없는 최강팀”이 된 SK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SK는 모든 약점을 굉장히 두꺼운 선수층과 용병술, 그리고 선수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조직력으로 극복해냈다. 적지 않은 악재 중에서도 아마 이호준의 부상이 가장 타격이 컸을 텐데, SK는 “4번 타자의 시즌아웃”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작년보다 더 무서운 공격력을 선보이며 여유 있게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박재홍의 부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작년에 시즌의 2/3에 해당하는 84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이호준의 부재를 메운 일등공신이 박재홍이기 때문이다. 이호준이 FA 재계약 이후 스프링캠프에서부터 부상으로 이탈한 뒤 시즌 중 잠시 복귀하였으나 다시 부상이 재발해 올 시즌 고작 8경기밖에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박재홍은 63경기에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이호준의 공백을 메워준 것이다.

박재홍의 올 시즌 타율은 0.317. 기아에서 트레이드되어 SK 소속이 된 2005년의 0.304 이후 3년만에 3할 타율에 복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아 시절인 2003년 0.510의 장타율을 기록한 후 5년만에 5할 장타율에 복귀한 것도 눈에 띄는 부활인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강 쿠바를 상대로도 꿇리지 않았던 장타력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떨어지다가 모처럼 다시 불붙은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니 SK로서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박재홍과의 계약 연장을 결정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팀을 옮긴 첫 해인 2005년에는 기대대로 중심타자의 역할을 해주었으나 FA 계약을 체결한 2006년 이후 2년 동안 평균 타율이 0.268에 불과할 정도로 부진했고,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에는 출전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던 것이다. 젊은 유망주 외야수가 넘치는 SK의 팀사정상 거액의 FA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박재홍의 진가는 한국시리즈에서 빛을 발해 김재현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큰 공헌을 세웠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더해 박재홍의 계약은 쉽게 연장되었고, 그 덕분에 박재홍은 지금 다시 한 번 전성기의 매서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박재홍의 선수생활은 재능과 명성에 비해 탈이 많은 편이었다. 연고구단인 해태에 1차지명되었으나 계약을 거부해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때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현대 피닉스를 택했던 안희봉 문희성 등의 아마추어 대표 거포들이 실업팀 투수를 상대로 하다가 프로 무대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반면, 박재홍의 방망이는 프로 투수들도 막지 못했으니, 3할에 가까운 타율에 신인이면서 국내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한 경악스러운 활약이었다.

이후 쭉 유니콘스의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매해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렸으며, 1998년과 2000년에 다시 30-30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손꼽혔다. 현대의 몬스터 시즌이었던 2000년에는 박경완 등과 함께 팀타선을 이끌며 115 타점으로 타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데뷔 후 처음으로 200루타를 기록하지 못한 그 해를 끝으로 박재홍은 기아로 트레이드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수비도 빼어났던 전도유망한 내야수 정성훈이 그 상대였다.

기아에서의 첫 시즌은 3할 타율과 5할 장타율, 그리고 다시 200루타를 찍은 명예회복의 장이었지만, 여기서도 박재홍은 팀과 그다지 융화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애당초 해태의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해 현대로 입단한 선수, 그래서 광주 출신이지만 기아 팬들은 박재홍을 마냥 예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빵재홍”이라는 별명도 이 때 얻게 된 것이다). 박재홍도 자신의 FA 자격 획득을 배려하지 않은 구단의 처사에 반발해 팀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말았다. 결국 트레이드를 자청, SK 김희걸과 1:1 트레이드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박재홍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강팀에 속해 있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홀로 팀타선을 이끄는 “독고다이” 스타일이 아니라, 수준이 뛰어난 선수들과의 시너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욱 극대화하는 스타일 같다는 뜻이다. 유독 대표팀에서 더욱 맹활약했던 것도, 화려한 멤버의 현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것도, 최강 SK에서 다시 부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올 시즌 박재홍마저 없었다면 SK는 어떻게 됐을까? 이호준의 부상으로 인해 여러 선수들이 1루수 자리에 들어가 보았지만 적어도 공격에 있어서 이호준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SK에서 1루수로 선발출장한 선수만 따로 추렸을 때의 타율은 0.238, OPS는 0.602에 불과하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이진영도 1루수로 출장한 경기에서는 0.276의 타율밖에 올리지 못했고, 그 외 1루 요원인 박정권 모창민 등의 타격도 시원치 못했던 탓이다. 그러니 박재홍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호준의 공백이 SK 타선에 가져올 마이너스 요인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활한 모습으로 때마침 그 자리에 있어준 박재홍 덕분에 SK의 가공할 타선은 4번 타자가 빠진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이지만, 그의 타고난 야구센스를 고려하면, 강팀에서의 동기부여만 충분히 된다면 몇 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때마침 그 자리에 돌아왔듯이 내년에도 박재홍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매섭게 방망이를 돌려준다면, 양준혁처럼 불혹을 앞두고 20-20을 달성하는 그런 쾌거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 작가의 다시 쓰는 "해피엔딩"

올 시즌, 프로야구팬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단어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무리 투수가 경기를 깨끗하게 매조지하지 못하고 역전 드라마를 허용할 때,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라고 하여 “작가”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는 롯데의 임경완. 올 해 처음 클로저를 맡은 이 중견 투수는 “임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과 함께 미니홈피가 공격당할 정도로 열성 팬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꾸준히 미들맨으로 활약하던 명성이 무색하게 지금은 경기에서 거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작가”에도 원조가 있다. 올 시즌 “임 작가”가 유행하기 전, 작년에는 “정 작가”가 있었다. 바로 두산의 마무리 투수 정재훈이다. 진필중이 떠난 뒷문을 불안하게 맡던 전병두까지 이탈한 후 2005년부터 두산의 뒷문을 책임 진 정재훈은, 두 해 연속 30 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면서도 1~2점대의 평균자책을 유지한 수준급 클로저였고, 오승환이 등장하기 전인 2005년 구원왕을 차지했던 명실공이 최고 마무리였다.

그런 그가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은 2007년부터. 표면적으로는 25 세이브를 거두며 여전히 빼어난 역할을 해주었지만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1년 동안 블론세이브가 단 네 번뿐이었던 이 투수가 불안한 이유, 그것은 기록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매 게임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까지 내보낸 뒤 무실점으로 마무리하곤 한 것이다. 실점이 많지 않으니 평균자책은 2.44로 나쁘지 않고, 마무리치고는 다소 높은 1.46의 WHIP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아무튼, 블론세이브는 적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승리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은 것이었고, 그래서 정재훈의 드라마는 두산 팬들에게 있어서 “해피엔딩”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정재훈은 클로저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었다. 2007 시즌 중에도 잠시 신인 임태훈에게 클로저를 내주고 선발로 외도를 했을 정도로 김경문 감독은 정재훈의 마무리 능력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올 시즌에도 출발은 클로저였으나 후배 이재우와 임태훈에게 마무리를 넘기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결국은 2군으로 밀려나기에 이른다. 올 해에도 벌써 17 세이브를 올렸지만, 두산 팬들도 세이브의 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점을 다투는 급박한 순간이 아닌, 2~3점의 여유가 있는 순간에 등판해 올린 세이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집필한 그의 드라마는 벌써부터 작년과 똑같은 네 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는 해피엔딩이 더 많았지만, 올 해는 새드엔딩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구원으로 등판한 경기에서 4.35의 실망스러운 평균자책을 기록했는데, 평균자책 0점대의 이재우, 1점대의 김상현, 신인왕 출신 임태훈 등이 버틴 두산의 불펜에서 이 정도의 성적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브레이크가 끝난 뒤 정재훈을 다시 1군으로 올리면서 그에게 선발 보직을 맡겼다. 김명제의 부상과 랜들의 부진 등으로 구멍이 크게 난 선발진을 보강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미 “선발투수 정재훈”은 작년에 실패했던 카드였다. 두 차례의 선발등판에서 11.57의 실망스러운 평균자책을 기록하면서, 김경문 감독이 스스로 “정재훈 선발 전환은 실패였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런 정재훈을, 작년보다 더 부진한 올 해 다시 선발로 돌린 것은 분명 두산에게는 하나의 모험이었다. 2군까지 추락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투수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모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재훈은 실질적인 두산의 2선발이 되었다. 3경기 18.2이닝 동안 자책점은 단 4점뿐. 3경기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1승 1패를 거두었다. 주무기인 포크볼의 위력이 살아났고, 원래 수준급 마무리 투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적극적인 승부근성으로 타자들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가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는 한화와 기아 등이었던 점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으나, 이 정도면 작년의 선발 전환 실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호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통 선발투수가 나이가 들면서 긴 이닝 내내 타자를 압도할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펜으로 가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마무리로 성공한 투수가 선발로 전환해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용수나 구대성 송진우 등이 팀사정에 따라 선발과 마무리를 수시로 오갔던 적은 있지만, 정재훈은 확실히 흔히 볼 수는 없는 케이스임이 분명하다. 물론 두산에서 정재훈을 계속 선발로 기용할지는 미지수이지만(이재우라는 최고의 불펜투수는 의외로 마무리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김명제의 복귀가 기약이 없다면 정재훈이 선발 로테이션에 남을 확률이 더 높다.

한 때 정재훈의 부진을 두고 “공인구 문제”라는 말이 많았다. 작년부터 기존보다 다소 사이즈가 커진 공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2006년 WBC에서의 부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것은 얼핏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원래 포크볼처럼 손가락을 크게 벌려 그립을 잡는 변화구는 한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는데, 공인구가 더 커지면 손가락을 더 크게 벌려야 하므로 투수에게 더욱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포크볼을 주무기로 하는 정재훈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 물론 정재훈은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인정한 적이 없으나 언론이나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재훈의 포크볼이 되살아난 것을 보면, 공인구 문제는 확실히 기우(杞憂)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통산 110 세이브를 기록하며 쌓은 승부근성과 관록, 아직 3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어깨는 정재훈의 크나큰 자산이다. 선발 경험이 단 몇 차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퀄리티 스타트를 쌓아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시켜도 충분히 제몫을 하고도 남을 것 같다. “작가”의 원조, 그리고 올 시즌 초 여러 차례 “새드엔딩”을 집필하며 팬들의 속을 썩였던 그가 지금 다시 선발로서 “해피엔딩”의 첫 줄을 쓰기 시작했다. 2위 싸움이 치열한 두산에게 있어서, 정재훈의 부활은 천군만마와 다름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고용병 브룸바의 쓸쓸한 마무리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현역 용병 중 최고를 고르라면 누구를 선택할까? 골고루 잘하는 클락, 화끈하게 돌리는 가르시아, 뒤늦게 들어왔지만 이름값을 해주는 페타지니, 아니면 “불쇼”가 유행인 올 시즌 가장 듬직한 마무리 중 한 명인 토마스, 이런 이름들을 거론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올 해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선수들이다. 꾸준히 잘해주면서 용병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려면 몇 해 더 올 해만큼의 활약을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현역 용병 중 으뜸은 브룸바라고 생각한다. 올 해까지 한국에서만 네 시즌을 뛰었고, 평균으로 계산해서 한 시즌당 3할 타율과 20홈런-70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히 팀의 중심을 지켜주었던 선수이다. 물론 다른 용병들처럼 한국에서 성공하자 일본 무대에 진출했으나 실패했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국을 선택해 “망가진”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타자이자 “엉성한” 히어로즈의 첫 번째 4번타자를 맡은 선수가 브룸바이다.

브룸바의 한국 데뷔는 2003년이었다. 당시 대체용병으로 현대에 입단한 뒤, 70경기에 나와 0.303의 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날려 실력을 인정받았다. 14개의 홈런은 풀시즌으로 가정했을 때 25개 안팎을 때릴 수 있는 검증된 장타력이었다. 물론 같은 해 팀 동료인 심정수가 무려 53개의 홈런을 날리는 괴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성적이었으나, 브룸바는 무난히 재계약에 성공한 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4년은 브룸바의 “몬스터 시즌”으로 기억된다. 0.343의 타율, 0.608의 장타율, 0.468의 출루율은 모두 리그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홈런은 박경완에게 1개, 타점은 이호준에게 7개가 뒤져 아쉽게 1위를 놓쳤지만, 사실상 5관왕에 필적하는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 셈이다. 무엇보다 힘만 앞세우는 외국인 타자가 아니라, 유연한 스윙에 힘을 실어 정교함과 파워를 동시에 갖추었다는 점에서 전성기의 타이론 우즈에도 뒤지지 않을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다. 2003년과 2004년,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 몫 거든 것도 물론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마이너리그에 머물던 그가, 낯선 땅에서 최고 팀의 최고 타자로 우뚝 선 순간이다.

그러나 그 해, 3관왕에 오른 최고의 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올스타 선발과 MVP 선정에 번번이 외면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됐을까, 결국 브룸바는 2005년 일본야구 오릭스로 이적하고 만다. 브룸바는 당시 인터뷰에서, 외국인이라고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올 시즌 초, 브룸바는 당시 상황을 묻는 인터뷰에 “충분히 이해한다”며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2년 동안 초라한 성적을 올리고(사실 입단 첫 해 성적은 적응기를 감안하면 아주 나쁘지 않았다. 브룸바는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두 번째 시즌을 망쳤다고 이야기한다), 브룸바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대에서는 당연히 브룸바를 환영했지만, 이미 팀의 사정은 그가 한창 날리던 2004년과는 전혀 달랐다. 팀의 해체는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고, 어려운 구단 사정은 퇴출된 용병의 대체용병을 뽑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2004년 함께 우승을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과 심정수 박진만은 팀에 없었고, 김수경과 조용준은 정상이 아니었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김동수 전준호 송지만 등이 팀의 기둥이었고, 초보 감독 김시진이 힘겹게 팀을 이끌고 있었다.

출발도 좋지 못했다. 시즌 초 브룸바가 부상에 시달리며 좋은 모습으로 보여주지 못해 퇴출설도 나돌았다. 만약 형편이 넉넉한 구단이라면 발 빠르게 대체용병을 구해 브룸바가 보따리를 쌌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2004년의 기억이 강렬한 것도 있었지만, 이런 팀 사정도 그에게 믿음을 실어주는 데 한 몫 했으리라. 결국 브룸바는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0.308의 타율, 29개의 홈런과 87 타점. 변변치 못한 타선 덕분에 개인기록에서는 손해를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2004년에 맞먹는 104개의 사사구를 얻어 여전한 공포의 대상임을 확인했다는 수확을 확인했다.

그렇게 시즌을 마쳤지만 브룸바의 야구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보류권을 가지고 있는 팀의 매각은 지지부진했고, 신생구단에서는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브룸바에게 연봉 삭감을 제시했다. 차라리 마이너리그나 멕시칸 리그에 진출할까 고민했다는 그는, 결국 정든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올 시즌, 전지훈련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약팀으로 쳐진 히어로즈의 타선을 홀로 버틴 것은 브룸바였다. 이택근이나 정성훈이 잔부상으로 들락날락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잔부상을 안고 있는 브룸바는 팀의 4번타자 역할을 확실히 해주었다. 타율은 다소 떨어져 3할 문턱에 약간 미달되었고, 홈런 타점 득점 모두 예년보다 줄어들었지만, 팬들도 다 안다. 브룸바의 기량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저히 떨어진 팀의 공격력을 부상 중에도 힘겹게 떠받들었다는 것을.

아직 시즌이 남아있지만 브룸바는 짐을 싸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퇴출은 아니다. 시즌 내내 괴롭혔던 아킬레스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한 출국이다. 이미 팀 성적이나 개인 성적 모두 무리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찍 시즌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부상을 치료하면서 올 시즌 주춤했던 자신의 기록을 회복하기 위해 담금질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내년 시즌이 순탄한 것도 아니다. 소속팀 히어로즈는 과연 내년까지 존재할 수는 있을지 의구스러울 정도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고, 수익성이라는 이유로 공헌도가 높은 주축 선수들의 연봉까지 대폭 삭감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내년에 브룸바가 뛸 팀은 남아있을까? 가뜩이나 삭감 당한 연봉은 올 해 성적 때문에 더 삭감 당하지는 않을까?

꾸준하고 성실하고 실력 있는, 게다가 수년 동안 국내에서 확실한 인상을 심어준 이 최고 용병의 마무리치고는 너무 쓸쓸하고 암울하지 않은가. 이것이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라고 하면서도 8개 구단을 꾸리기도 버거운 한국야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서글프다. 부디 브룸바가 내년에도 이 땅에서 그 괴력을 마음껏 뽐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장외홈런이 나오면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목동구장에서 장외홈런을 날릴 뻔했던, 그 시원시원한 스윙을 옭아매는 족쇄(부상이든 다른 것이든)를 내년에는 보고 싶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히어로즈와 유니콘스 시절의 브룸바. 왼쪽 사진은 목동구장 1호 홈런을 날린 후.



한기주,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라!

한기주 수난시대이다. 올 해 유독 각팀의 마무리 투수들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가운데, 유독 한기주가 더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올림픽 때문이다. 정대현이 부상 후유증으로, 오승환이 구위 저하로 신통치 않았기에 대표팀 마무리 투수로 일찌감치 낙점 받은 한기주는, 정작 본선 무대에서 상대팀을 가리지 않고 실점을 허용하면서 마무리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다. 선수 본인의 자신감 상실을 우려한 코칭스태프는 틈나는대로 한기주를 올리며 자신감 회복의 기회를 주고 있지만, 이것은 더 큰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155km를 우습게 넘기는 광속구는 여전하다. 아무리 미국이나 일본에 155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하위 타순에서 모두 만만하게 공략할 수 있는 구위는 아니다. 실제로 올림픽 예선 일본전에서도 한기주의 구위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었다. 시즌 중에도 다소 기복은 있었으나 평균자책 1.69, WHIP 1.02, 피안타율 0.212의 빼어난 피칭을 보이고 있었다. 21세이브로 전체 3위.

리그에서의 투구내용도 나쁘지 않다. 그가 던진 투구수의 10% 이상을 타자들이 헛스윙 했으며(이것은 김광현 오승환 등과 비슷한 수치이다), 22% 이상이 파울 타구가 되었다(역시 오승환과 비슷하다). 즉, 투구의 1/3을 타자들이 헛치거나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뜻으로 그의 구위가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0km 이상의 광속구, 그리고 간간히 섞어 던지는 슬라이더만으로도 타자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기주는 우커송 경기장에서 연일 악몽을 드리우고 있을까? 결과론이지만, 타자들이 직구만 노리고 있고 한기주는 거기에 대고 직구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48이닝 동안 16개의 사사구만 내준 한기주를 제구력이 나쁜 투수라 부르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제구력이 좋지 못한 투수가 맞다. 엄정욱 최대성 등 155km 이상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해 애를 먹는데, 한기주의 경우는 코너워크가 덜 되는 가운데 직구가 많다는 점에서 역시 제구력이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구력이 좋지 못해도 1이닝 정도만 던지는 마무리 투수라면 강속구가 충분한 경쟁력이 된다. 과거 LG의 뒷문을 책임졌던 신윤호(現 SK)를 보라. 그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빠른 150km대의 묵직한 직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구력 불안으로 몇 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러다가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의 조언으로 슬라이더를 장착했고, 제구가 되지 않는 슬라이더만으로도 타자들은 겁을 먹기 시작해 순식간에 리그 톱 클로저가 될 수 있었다. 직구 외의 다른 레퍼토리가 타자의 머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 타자들은 빠른 직구에 대처하는 것이 그만큼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기주의 슬라이더는 직구만큼 위력적인 구질은 아니다. 그러나 슬라이더의 구사 빈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타자들은 구질을 예측할 때 경우의 수를 더 고민해야 하고, 머리 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155km 이상의 직구를 맞이하면 비록 그것이 한가운데 직구라 하더라도 쉽게 배트를 내밀기 어렵다. 그의 슬라이더가 각이 예리한 편은 아니지만 구속은 여타 투수의 직구와 비슷한 140km대를 찍곤 한다. 즉, 타자들이 예측을 못한 상태에서 정타로 날리기는 쉽지 않다는 소리이다. 오승환이 언터처블의 모습으로 심지어 MLB 타자들에게까지 극찬을 받던 시절, 그의 레퍼토리는 거의 대부분이 직구였다. 당시 오승환에게 변화구 장착을 주문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워낙 직구의 구위가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한기주를 이야기할 때 흔히 “자신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자신의 직구에 대한 자신감,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 직구 승부를 고집하다가 얻어맞는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표현이 아니라 한기주의 소속팀 조범현 감독의 표현이니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감”이야말로 마무리 투수의 가장 소중한 무기이다. 올 시즌 한기주의 IRS(승계주자 실점)은 9/34로 리그 평균보다 훨씬 양호하며, 2007 시즌에는 7/38로 마무리투수 중 단연 으뜸이었다. 분명 한기주는 주자가 있다고 위축되는 “새가슴”과는 거리가 먼 선수이다.

이번 올림픽의 결과가 어떻게 끝맺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기주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끼워 넣는 슬라이더가 아니라, 본인이 좀 더 각을 예리하게 다듬어 성의 있게 던지는 슬라이더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직구의 완급을 조절하면 금상첨화이다. 155km의 직구를 기다리는 타자에게 던지는 140km대 직구는 그 자체로 체인지업의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굳이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을 연마할 필요도 없다. 체인지업을 몸에 익히는 투수들이 점점 구속의 저하를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며,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함께 던지는 투수의 팔꿈치가 얼마나 쉽게 고장 나는지도 무수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기주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의 업그레이드”이다. “내 공을 칠 수 있겠어”라는 자신감에서, “내가 슬라이더까지 섞는데 내 공을 칠 수 있겠어”라는 식으로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말이다. 올 시즌 임경완이나 우규민 등의 클로저가 넉아웃당할 때 많은 야구팬들은 “마무리는 역시 강속구”라는 명제를 다시금 떠올리곤 했었다. 바로 그 강속구 투수, 한기주가 위축될 이유는 없다. 아직 21세의 젊은 고졸 3년차 투수에게는 좌절할 시간보다는 발전할 시간이 더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인용한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



BLOG main image
유피디's 수첩 - 야구와 관련된 이런저런 것들 from UPD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96)
Stat Analysis (35)
AXOS Report (12)
Baseball Essay (21)
Special Issue (27)
notice (1)
 TAGS
 Calendar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Archive
 Link Site
 Visitor Statistics
Total :
Today :
Yesterday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