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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용병 브룸바의 쓸쓸한 마무리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현역 용병 중 최고를 고르라면 누구를 선택할까? 골고루 잘하는 클락, 화끈하게 돌리는 가르시아, 뒤늦게 들어왔지만 이름값을 해주는 페타지니, 아니면 “불쇼”가 유행인 올 시즌 가장 듬직한 마무리 중 한 명인 토마스, 이런 이름들을 거론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올 해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선수들이다. 꾸준히 잘해주면서 용병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려면 몇 해 더 올 해만큼의 활약을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현역 용병 중 으뜸은 브룸바라고 생각한다. 올 해까지 한국에서만 네 시즌을 뛰었고, 평균으로 계산해서 한 시즌당 3할 타율과 20홈런-70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히 팀의 중심을 지켜주었던 선수이다. 물론 다른 용병들처럼 한국에서 성공하자 일본 무대에 진출했으나 실패했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국을 선택해 “망가진”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타자이자 “엉성한” 히어로즈의 첫 번째 4번타자를 맡은 선수가 브룸바이다.

브룸바의 한국 데뷔는 2003년이었다. 당시 대체용병으로 현대에 입단한 뒤, 70경기에 나와 0.303의 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날려 실력을 인정받았다. 14개의 홈런은 풀시즌으로 가정했을 때 25개 안팎을 때릴 수 있는 검증된 장타력이었다. 물론 같은 해 팀 동료인 심정수가 무려 53개의 홈런을 날리는 괴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성적이었으나, 브룸바는 무난히 재계약에 성공한 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4년은 브룸바의 “몬스터 시즌”으로 기억된다. 0.343의 타율, 0.608의 장타율, 0.468의 출루율은 모두 리그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홈런은 박경완에게 1개, 타점은 이호준에게 7개가 뒤져 아쉽게 1위를 놓쳤지만, 사실상 5관왕에 필적하는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 셈이다. 무엇보다 힘만 앞세우는 외국인 타자가 아니라, 유연한 스윙에 힘을 실어 정교함과 파워를 동시에 갖추었다는 점에서 전성기의 타이론 우즈에도 뒤지지 않을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다. 2003년과 2004년,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 몫 거든 것도 물론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마이너리그에 머물던 그가, 낯선 땅에서 최고 팀의 최고 타자로 우뚝 선 순간이다.

그러나 그 해, 3관왕에 오른 최고의 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올스타 선발과 MVP 선정에 번번이 외면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됐을까, 결국 브룸바는 2005년 일본야구 오릭스로 이적하고 만다. 브룸바는 당시 인터뷰에서, 외국인이라고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올 시즌 초, 브룸바는 당시 상황을 묻는 인터뷰에 “충분히 이해한다”며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2년 동안 초라한 성적을 올리고(사실 입단 첫 해 성적은 적응기를 감안하면 아주 나쁘지 않았다. 브룸바는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두 번째 시즌을 망쳤다고 이야기한다), 브룸바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대에서는 당연히 브룸바를 환영했지만, 이미 팀의 사정은 그가 한창 날리던 2004년과는 전혀 달랐다. 팀의 해체는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고, 어려운 구단 사정은 퇴출된 용병의 대체용병을 뽑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2004년 함께 우승을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과 심정수 박진만은 팀에 없었고, 김수경과 조용준은 정상이 아니었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김동수 전준호 송지만 등이 팀의 기둥이었고, 초보 감독 김시진이 힘겹게 팀을 이끌고 있었다.

출발도 좋지 못했다. 시즌 초 브룸바가 부상에 시달리며 좋은 모습으로 보여주지 못해 퇴출설도 나돌았다. 만약 형편이 넉넉한 구단이라면 발 빠르게 대체용병을 구해 브룸바가 보따리를 쌌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2004년의 기억이 강렬한 것도 있었지만, 이런 팀 사정도 그에게 믿음을 실어주는 데 한 몫 했으리라. 결국 브룸바는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0.308의 타율, 29개의 홈런과 87 타점. 변변치 못한 타선 덕분에 개인기록에서는 손해를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2004년에 맞먹는 104개의 사사구를 얻어 여전한 공포의 대상임을 확인했다는 수확을 확인했다.

그렇게 시즌을 마쳤지만 브룸바의 야구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보류권을 가지고 있는 팀의 매각은 지지부진했고, 신생구단에서는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브룸바에게 연봉 삭감을 제시했다. 차라리 마이너리그나 멕시칸 리그에 진출할까 고민했다는 그는, 결국 정든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올 시즌, 전지훈련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약팀으로 쳐진 히어로즈의 타선을 홀로 버틴 것은 브룸바였다. 이택근이나 정성훈이 잔부상으로 들락날락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잔부상을 안고 있는 브룸바는 팀의 4번타자 역할을 확실히 해주었다. 타율은 다소 떨어져 3할 문턱에 약간 미달되었고, 홈런 타점 득점 모두 예년보다 줄어들었지만, 팬들도 다 안다. 브룸바의 기량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저히 떨어진 팀의 공격력을 부상 중에도 힘겹게 떠받들었다는 것을.

아직 시즌이 남아있지만 브룸바는 짐을 싸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퇴출은 아니다. 시즌 내내 괴롭혔던 아킬레스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한 출국이다. 이미 팀 성적이나 개인 성적 모두 무리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찍 시즌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부상을 치료하면서 올 시즌 주춤했던 자신의 기록을 회복하기 위해 담금질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내년 시즌이 순탄한 것도 아니다. 소속팀 히어로즈는 과연 내년까지 존재할 수는 있을지 의구스러울 정도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고, 수익성이라는 이유로 공헌도가 높은 주축 선수들의 연봉까지 대폭 삭감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내년에 브룸바가 뛸 팀은 남아있을까? 가뜩이나 삭감 당한 연봉은 올 해 성적 때문에 더 삭감 당하지는 않을까?

꾸준하고 성실하고 실력 있는, 게다가 수년 동안 국내에서 확실한 인상을 심어준 이 최고 용병의 마무리치고는 너무 쓸쓸하고 암울하지 않은가. 이것이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라고 하면서도 8개 구단을 꾸리기도 버거운 한국야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서글프다. 부디 브룸바가 내년에도 이 땅에서 그 괴력을 마음껏 뽐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장외홈런이 나오면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목동구장에서 장외홈런을 날릴 뻔했던, 그 시원시원한 스윙을 옭아매는 족쇄(부상이든 다른 것이든)를 내년에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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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즈와 유니콘스 시절의 브룸바. 왼쪽 사진은 목동구장 1호 홈런을 날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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