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s Baseball Note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박재홍, 때마침 그 자리에!

SK 와이번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작년에 이어 2연패. 매직넘버 0가 된 지금 2위권과의 승차는 무려 11.5게임. 한 때 7할 승률에 육박하기도 했던 이 무시무시한 팀의 현재 승률은 0.675이다(77승 37패).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3연전을 할 때 꼭 산술적으로 2승 1패 이상은 했다는 뜻으로, 어느 팀과 붙어도 우세를 점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SK는 올 해 전구단을 상대로 우세를 보였으며, 하위권(6~8위) 팀을 상대로는 8할에 육박하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토록 “적수가 없는 최강팀”이 된 SK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SK는 모든 약점을 굉장히 두꺼운 선수층과 용병술, 그리고 선수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조직력으로 극복해냈다. 적지 않은 악재 중에서도 아마 이호준의 부상이 가장 타격이 컸을 텐데, SK는 “4번 타자의 시즌아웃”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작년보다 더 무서운 공격력을 선보이며 여유 있게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박재홍의 부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작년에 시즌의 2/3에 해당하는 84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이호준의 부재를 메운 일등공신이 박재홍이기 때문이다. 이호준이 FA 재계약 이후 스프링캠프에서부터 부상으로 이탈한 뒤 시즌 중 잠시 복귀하였으나 다시 부상이 재발해 올 시즌 고작 8경기밖에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박재홍은 63경기에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이호준의 공백을 메워준 것이다.

박재홍의 올 시즌 타율은 0.317. 기아에서 트레이드되어 SK 소속이 된 2005년의 0.304 이후 3년만에 3할 타율에 복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아 시절인 2003년 0.510의 장타율을 기록한 후 5년만에 5할 장타율에 복귀한 것도 눈에 띄는 부활인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강 쿠바를 상대로도 꿇리지 않았던 장타력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떨어지다가 모처럼 다시 불붙은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니 SK로서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박재홍과의 계약 연장을 결정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팀을 옮긴 첫 해인 2005년에는 기대대로 중심타자의 역할을 해주었으나 FA 계약을 체결한 2006년 이후 2년 동안 평균 타율이 0.268에 불과할 정도로 부진했고,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에는 출전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던 것이다. 젊은 유망주 외야수가 넘치는 SK의 팀사정상 거액의 FA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박재홍의 진가는 한국시리즈에서 빛을 발해 김재현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큰 공헌을 세웠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더해 박재홍의 계약은 쉽게 연장되었고, 그 덕분에 박재홍은 지금 다시 한 번 전성기의 매서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박재홍의 선수생활은 재능과 명성에 비해 탈이 많은 편이었다. 연고구단인 해태에 1차지명되었으나 계약을 거부해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때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현대 피닉스를 택했던 안희봉 문희성 등의 아마추어 대표 거포들이 실업팀 투수를 상대로 하다가 프로 무대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반면, 박재홍의 방망이는 프로 투수들도 막지 못했으니, 3할에 가까운 타율에 신인이면서 국내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한 경악스러운 활약이었다.

이후 쭉 유니콘스의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매해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렸으며, 1998년과 2000년에 다시 30-30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손꼽혔다. 현대의 몬스터 시즌이었던 2000년에는 박경완 등과 함께 팀타선을 이끌며 115 타점으로 타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데뷔 후 처음으로 200루타를 기록하지 못한 그 해를 끝으로 박재홍은 기아로 트레이드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수비도 빼어났던 전도유망한 내야수 정성훈이 그 상대였다.

기아에서의 첫 시즌은 3할 타율과 5할 장타율, 그리고 다시 200루타를 찍은 명예회복의 장이었지만, 여기서도 박재홍은 팀과 그다지 융화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애당초 해태의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해 현대로 입단한 선수, 그래서 광주 출신이지만 기아 팬들은 박재홍을 마냥 예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빵재홍”이라는 별명도 이 때 얻게 된 것이다). 박재홍도 자신의 FA 자격 획득을 배려하지 않은 구단의 처사에 반발해 팀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말았다. 결국 트레이드를 자청, SK 김희걸과 1:1 트레이드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박재홍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강팀에 속해 있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홀로 팀타선을 이끄는 “독고다이” 스타일이 아니라, 수준이 뛰어난 선수들과의 시너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욱 극대화하는 스타일 같다는 뜻이다. 유독 대표팀에서 더욱 맹활약했던 것도, 화려한 멤버의 현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것도, 최강 SK에서 다시 부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올 시즌 박재홍마저 없었다면 SK는 어떻게 됐을까? 이호준의 부상으로 인해 여러 선수들이 1루수 자리에 들어가 보았지만 적어도 공격에 있어서 이호준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SK에서 1루수로 선발출장한 선수만 따로 추렸을 때의 타율은 0.238, OPS는 0.602에 불과하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이진영도 1루수로 출장한 경기에서는 0.276의 타율밖에 올리지 못했고, 그 외 1루 요원인 박정권 모창민 등의 타격도 시원치 못했던 탓이다. 그러니 박재홍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호준의 공백이 SK 타선에 가져올 마이너스 요인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활한 모습으로 때마침 그 자리에 있어준 박재홍 덕분에 SK의 가공할 타선은 4번 타자가 빠진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이지만, 그의 타고난 야구센스를 고려하면, 강팀에서의 동기부여만 충분히 된다면 몇 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때마침 그 자리에 돌아왔듯이 내년에도 박재홍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매섭게 방망이를 돌려준다면, 양준혁처럼 불혹을 앞두고 20-20을 달성하는 그런 쾌거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BLOG main image
유피디's 수첩 - 야구와 관련된 이런저런 것들 from UPD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96)
Stat Analysis (35)
AXOS Report (12)
Baseball Essay (21)
Special Issue (27)
notice (1)
 TAGS
 Calendar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Archive
 Link Site
 Visitor Statistics
Total :
Today :
Yesterday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