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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의 다시 쓰는 "해피엔딩"

올 시즌, 프로야구팬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단어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무리 투수가 경기를 깨끗하게 매조지하지 못하고 역전 드라마를 허용할 때,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라고 하여 “작가”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는 롯데의 임경완. 올 해 처음 클로저를 맡은 이 중견 투수는 “임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과 함께 미니홈피가 공격당할 정도로 열성 팬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꾸준히 미들맨으로 활약하던 명성이 무색하게 지금은 경기에서 거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작가”에도 원조가 있다. 올 시즌 “임 작가”가 유행하기 전, 작년에는 “정 작가”가 있었다. 바로 두산의 마무리 투수 정재훈이다. 진필중이 떠난 뒷문을 불안하게 맡던 전병두까지 이탈한 후 2005년부터 두산의 뒷문을 책임 진 정재훈은, 두 해 연속 30 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면서도 1~2점대의 평균자책을 유지한 수준급 클로저였고, 오승환이 등장하기 전인 2005년 구원왕을 차지했던 명실공이 최고 마무리였다.

그런 그가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은 2007년부터. 표면적으로는 25 세이브를 거두며 여전히 빼어난 역할을 해주었지만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1년 동안 블론세이브가 단 네 번뿐이었던 이 투수가 불안한 이유, 그것은 기록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매 게임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까지 내보낸 뒤 무실점으로 마무리하곤 한 것이다. 실점이 많지 않으니 평균자책은 2.44로 나쁘지 않고, 마무리치고는 다소 높은 1.46의 WHIP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아무튼, 블론세이브는 적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승리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은 것이었고, 그래서 정재훈의 드라마는 두산 팬들에게 있어서 “해피엔딩”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정재훈은 클로저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었다. 2007 시즌 중에도 잠시 신인 임태훈에게 클로저를 내주고 선발로 외도를 했을 정도로 김경문 감독은 정재훈의 마무리 능력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올 시즌에도 출발은 클로저였으나 후배 이재우와 임태훈에게 마무리를 넘기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결국은 2군으로 밀려나기에 이른다. 올 해에도 벌써 17 세이브를 올렸지만, 두산 팬들도 세이브의 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점을 다투는 급박한 순간이 아닌, 2~3점의 여유가 있는 순간에 등판해 올린 세이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집필한 그의 드라마는 벌써부터 작년과 똑같은 네 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는 해피엔딩이 더 많았지만, 올 해는 새드엔딩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구원으로 등판한 경기에서 4.35의 실망스러운 평균자책을 기록했는데, 평균자책 0점대의 이재우, 1점대의 김상현, 신인왕 출신 임태훈 등이 버틴 두산의 불펜에서 이 정도의 성적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브레이크가 끝난 뒤 정재훈을 다시 1군으로 올리면서 그에게 선발 보직을 맡겼다. 김명제의 부상과 랜들의 부진 등으로 구멍이 크게 난 선발진을 보강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미 “선발투수 정재훈”은 작년에 실패했던 카드였다. 두 차례의 선발등판에서 11.57의 실망스러운 평균자책을 기록하면서, 김경문 감독이 스스로 “정재훈 선발 전환은 실패였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런 정재훈을, 작년보다 더 부진한 올 해 다시 선발로 돌린 것은 분명 두산에게는 하나의 모험이었다. 2군까지 추락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투수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모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재훈은 실질적인 두산의 2선발이 되었다. 3경기 18.2이닝 동안 자책점은 단 4점뿐. 3경기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1승 1패를 거두었다. 주무기인 포크볼의 위력이 살아났고, 원래 수준급 마무리 투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적극적인 승부근성으로 타자들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가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는 한화와 기아 등이었던 점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으나, 이 정도면 작년의 선발 전환 실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호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통 선발투수가 나이가 들면서 긴 이닝 내내 타자를 압도할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펜으로 가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마무리로 성공한 투수가 선발로 전환해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용수나 구대성 송진우 등이 팀사정에 따라 선발과 마무리를 수시로 오갔던 적은 있지만, 정재훈은 확실히 흔히 볼 수는 없는 케이스임이 분명하다. 물론 두산에서 정재훈을 계속 선발로 기용할지는 미지수이지만(이재우라는 최고의 불펜투수는 의외로 마무리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김명제의 복귀가 기약이 없다면 정재훈이 선발 로테이션에 남을 확률이 더 높다.

한 때 정재훈의 부진을 두고 “공인구 문제”라는 말이 많았다. 작년부터 기존보다 다소 사이즈가 커진 공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2006년 WBC에서의 부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것은 얼핏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원래 포크볼처럼 손가락을 크게 벌려 그립을 잡는 변화구는 한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는데, 공인구가 더 커지면 손가락을 더 크게 벌려야 하므로 투수에게 더욱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포크볼을 주무기로 하는 정재훈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 물론 정재훈은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인정한 적이 없으나 언론이나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재훈의 포크볼이 되살아난 것을 보면, 공인구 문제는 확실히 기우(杞憂)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통산 110 세이브를 기록하며 쌓은 승부근성과 관록, 아직 3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어깨는 정재훈의 크나큰 자산이다. 선발 경험이 단 몇 차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퀄리티 스타트를 쌓아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시켜도 충분히 제몫을 하고도 남을 것 같다. “작가”의 원조, 그리고 올 시즌 초 여러 차례 “새드엔딩”을 집필하며 팬들의 속을 썩였던 그가 지금 다시 선발로서 “해피엔딩”의 첫 줄을 쓰기 시작했다. 2위 싸움이 치열한 두산에게 있어서, 정재훈의 부활은 천군만마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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