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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5   [Essay] 비로소 이동현의 그림자를 지우다.


[Essay] 비로소 이동현의 그림자를 지우다.
 조용준은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해 구원왕에 오르며 신인상까지 수상했던 걸출한 투수였다. 이후 4년 연속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며 “강팀” 유니콘스의 뒷문을 책임졌던 그는, 그러나 지금 부상 후유증 때문에 더 이상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히어로즈 팬들은 조용준을 찾지 않는다. 그 자리를 박준수 조용훈 송신영 김성현 등 다른 투수들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표가 난다고 했지만, 강팀이라면 이처럼 난 자리가 표가 나는 것도 한 순간이어야 한다. 가령, 전년도 우승팀의 4번타자 이호준의 부상이 분명 SK 와이번스로서는 마이너스 요인이지만, 그것 때문에 팀 공격력이 형편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자리는 박경완 박재홍 등이 훌륭히 메우며 SK의 상위권 질주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니 SK 팬들은 이호준만을 애타게 찾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이호준까지 복귀했을 때 SK는 더욱 강한 타선을 갖추게 될 것을 기대하면 그만이다.


2007년 LG 트윈스는 가을잔치의 문턱까지 갔다. 전력이 튼튼하지 못했지만 훨씬 끈끈해진 팀컬러로 시즌 막판까지도 4강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김우석(現 삼성)의 결정적인 에러로 SK에게 패했던 그 날, LG의 가을잔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팬들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김우석을 원망했지만, 또 한 명, 무리한 등판의 부담과 허리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막판 연달아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우규민을 아쉬워했다.


그 시점에 LG 팬들이 떠올린 이름은 이동현이었다. 확실한 셋업맨만 있었어도 우규민의 과부하는 없었으리라, 이동현이라면 그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LG 팬들의 탄식이었다. 김민기(17 홀드)가 분전했지만 평균자책 4.28에 3할이 넘는 피안타율로 셋업맨의 역할은 무리였다. 그 결과 무려 62경기(시즌의 절반)에 등판해 78이닝을 던져야 했던 클로저 우규민은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LG의 뒷심부족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단 한 사람 이동현만 있었더라면...


LG 팬들은 이런 식으로 벌써 4년째 이동현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 팀이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아마추어 시절 날고 기었다는 훌륭한 유망주들이 매년마다 입단하는 LG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동현이 특별했던 것은 그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프로에서 곧바로 재현한 거의 유일한 투수 유망주이고, 짧은 시기 동안 확실한 모습으로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2001년 입단한 이동현은 비록 4승 6패 평균자책 5.37로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신인으로서 100이닝 이상을 던지며 팀의 주전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은 “이동현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불펜의 핵심으로 이상훈 앞에서 8승 3패 7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 2.67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기적의 문턱까지 최고의 수훈을 세웠다. 당시 하일성 해설위원은 이동현의 투구를 보면서 “관록”이라는 말을 쓸 정도였다. 고졸 2년차 투수가 “관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이동현이 LG 팬들에게 남겨준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02년 혹사 후유증으로 2003년 다소 부진했던 그는, 2004년 비로소 팀의 클로저로 확실한 자리를 굳혔다. FA로 영입한 진필중의 부진으로 시즌 중간부터 클로저의 역할을 맡은 그는 150km에 달하는 강속구와 수준급 포크볼로 12세이브와 1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무리한 투구의 후유증으로 팔꿈치가 고장 나 2005년부터 그의 모습을 마운드에서 볼 수는 없었다. 하필 이 때부터 LG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강제로 은퇴시키거나 타팀으로 쫓아내면서 팀의 성적도 하위권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타자 중에서는 이병규 등 주축선수가 있었으나 투수 중에서는 잠깐 활약한 이승호 외에는 이렇다할만한 선수가 없어 팬들은 더더욱 이동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동현이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군에 입대했을 때 오히려 팬들은 그의 “휴식”을 기원했다. 푹 쉬고, 깨끗이 회복해 돌아오라는 응원이었다. 그리고 이동현은 의병 제대 후 2007년 다시 팀으로 돌아왔고, 팬들은 그의 복귀를 열렬히 환영했지만, 여전히 그를 마운드에서 볼 수는 없다.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는 다시 한 번 수술을 선택했고, 같은 곳에 세 번째 칼을 댄 그가 다시 예전 같은 공을 던질 수 있을지는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난 자리가 오랫동안 표가 난다면 강팀이라 할 수 없다고 했건만, LG는 벌써 4년째 이동현의 난 자리가 크게 비어있다. 아직도 LG 팬들은 이동현을 그리워하고 있고, 이동현이 돌아와야 비로소 불펜이 완성된다고 믿고 있다. 이동현까지 돌아오면 더 강한 불펜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동현이 돌아와야 불펜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전통의 강호 LG가 몇 년째 가을잔치와 거리가 먼 것이 이런 팀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LG 팬들은 이동현 대신 다른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고졸신인 정찬헌. 150km에 가까운 강속구에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 정찬헌의 구질은 “뒷문지기”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정확히 갖추고 있다. 올 해 LG가 치른 15경기 중 7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해 약 11이닝 동안 14개의 삼진을 잡고 있다. 비록 9개의 사사구로 제구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고졸신인으로 대선배들 앞에서 강속구를 뿌려대는 정찬헌을 보면서 LG 팬들은 비로소 이동현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다.


그리고 4월 15일, 정찬헌은 의미 있는 자리에 섰다. 우규민의 난조로 세이브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것. 긴장한 정찬헌은 풀카운트에서 내야땅볼을 유도했으나 1루 송구 실수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팀이 역전승을 거두어 시즌 2승을 올렸으나 데뷔 후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찬헌은 “결정구를 가지고 있는 파이어볼러”로서의 장점을 다시금 팬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우규민이 결정구가 없어 계속 커트 당하다가 연속안타를 허용한 것에 반해, 정찬헌은 (비록 실책으로 역전을 허용했으나) 타자와의 승부에서 우위에 선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시즌이 계속될수록 정찬헌이 루키의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아니, 평균적으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명품 구위와 결정구, 그것만으로도 LG 팬들은 이제 더 이상 이동현을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동현의 빈자리가 순식간에 채워지지는 못하겠지만, 겁 없는 고졸신인이 그 자리를 채워갈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이제는 이동현이 없어도 LG의 불펜이 완성될 수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동현(그는 아직 26세밖에 되지 않았다)까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면 LG의 불펜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LG는 그렇게 조금씩 더 강팀의 면모를 되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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