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찬스에 강하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사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득점권 타율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일텐데,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올 시즌 현재까지 두산 김현수의 득점권 타율은 0.333입니다. 득점권 세 번 중 한 번은 안타를 때려주었다는 뜻이니 당연히 찬스에 강한 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현수의 올 시즌 타율은 0.377입니다. 김현수는 득점권 상황에서 66타수 22안타(타율 0.333), 그 외의 상황에서 162타수 64안타(타율 0.39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득점권 타율이 0.333이니까 찬스에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득점권이 되면 타율이 6푼 이상 떨어지니까 찬스에 약하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한 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일단 올 시즌 규정타석의 절반 이상을 채운 타자 85명을 대상으로 득점권 타율의 10위까지의 순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선수들이 득점권 상황에서 잘 때려주는 선수들입니다.
그러면, 득점권 상황이 되면 평소보다 더 괴력을 보이는, 그야말로 "찬스에 각성하는" 타자들은 누가 있을까요? 득점권 타율이 비득점권 타율보다 월등히 높아지는 순서대로 상위 10명과 하위 5명을 정리했습니다.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지 않으면 1할 타율에 그치는 김상훈이 득점권에서는 0.375로 무려 2할 이상의 타율 상승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치용 역시 1할 타자에서 3할 타자로 대각성하고, 김재호도 2할 초반에서 3할로 껑충 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정근우는 비득점권 상황에는 4할에 육박하지만 득점권에서는 1할대에 그칩니다. 타율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타자는 삼성의 김상수. 부담없는 상황에는 신인답지 않게 3할을 때려주지만 득점권 상황에는 1할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의 방식대로 출루율도 차이를 뽑아봤습니다.
브룸바 최희섭이 1~2위로 갑자기 나타났네요. 역시 위기상황에서는 중심타선과의 승부를 피하기 때문에 사사구가 많아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득점권 상황에서 최희섭까지 승부를 피하면 다음 타자인 김상현의 득점권 타율이 무섭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최희섭과 승부를 하기도 겁나고 승부를 피하기도 겁나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두 선수가 요즘은 약간 슬럼프 기미가 보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KIA가 순식간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간 일등공신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반대의 경우, 이대형은 비득점권 상황에서보다 출루율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주자가 앞에 있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공을 건드리기 때문에 사사구가 적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구요. 김태균은 상당히 뜻밖이지만 올 해 워낙 부상 여파가 크다는 것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가장 큰 폭으로 출루율이 떨어진 선수는 타율과 마찬가지로 김상수입니다.
살펴본 김에 OPS까지 보겠습니다.
김상현이 1위로 치고 올라왔는데, 무려 OPS 5할 이상 올라갑니다. 김상훈도 거의 5할가량 상승하구요. 그 외 타율/출루율 부문에서 순위에 들지 못했던 박용택이 4위에 올라있는데, 타격 1위에 득점권 타율 1위를 기록할만큼 득점권/비득점권 가리지 않고 꾸준히 잘 때려주기 때문에 위에서는 순위에 따로 들지 못했지만, OPS만큼은 득점권 상황에서 월등히 좋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율/출루율보다 상대적으로 장타율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득점권 OPS 1.362도 전체 1위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득점권 상황에서 OPS가 5할 이상 떨어진 선수도 있습니다. 김상수와 박석민이 그 주인공이구요. 팀내 중심타선 역할을 해주는 이택근과 가르시아도 득점권 상황에서 OPS가 크게 떨어진 것이 눈에 띕니다.
득점권 타율 등 득점권 상황의 스탯은 사실 모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신뢰할만한 기록은 아닙니다. 당장 안타 몇 개만 더 때려도 타율이 쑥쑥 올라가버리니까요. 하지만 팀의 주전급으로 기용되는 선수들이 시즌을 절반 가까이 치르며 쌓은 기록이라면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일단 얼핏 생각하기에, 득점권 상황에서 괴물로 돌변하는 선수들 앞에는 출루율이 높은 선수들이 오는 것이 유리하고, 그 반대인 경우는 되도록 찬스가 많이 가지 않도록 타순을 짜는 용병술도 필요하겠죠. 다음에 시간이 되면 그런 것을 좀 더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아마 그 때쯤이면 득점권 타율도 확 바뀌어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
- 모든 기록은 아이스탯(
www.istat.co.kr)을 참고했습니다.
- 위 기록은 6월 19일까지의 기록을 기준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