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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2연전에 나타난 8개구단의 변화
프로야구 개막 후 각팀이 2경기씩을 마쳤습니다. 개막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겨우내 담금질한 팀의 베스트 전력을 팬들에게 공개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개막전 선발 출장명단을 보면 그 팀의 한 해 프리뷰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상 중인 선수도 있고, 아직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는 점은 고려하여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하 정리한 테이블은 2008년과 2009년의 개막 2연전 선발 출전 + 주전 클로저의 명단입니다. (두산과 히어로즈는 개막전의 우천 순연으로 인해, 첫 두 경기의 선발 명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정리된 자료에서,
2008년 명단 중 굵은 글씨는 2009년에도 선발 오더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
파란 글씨는 2008년과 2009년에 포지션까지 똑같이 출전한 선수들,
2009년 명단에서 붉은 글씨는 2008년 로스터에 없었던, 즉 스프링캠프 중 새로 보강된 선수들입니다.
2008년 명단의 흐린 회색 글씨는 방출/이적/군입대 등으로 2009년에 팀에 남아있지 않은 선수들입니다.

1. 삼성 라이온즈

심정수의 은퇴와 박한이의 부상으로 인해 외야진은 다소 변화가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습니다. 눈에 띄는 선수는 2루수에 1번타자로 기용된 신인 김상수인데, 삼성에 없었던 "발야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대주로 주목할만합니다. 또한 김상수를 비롯해 새롭게 선발명단에 포함된 현재윤 우동균 등이 모두 발 빠른 선수들이기 때문에 삼성의 팀컬러가 확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하였습니다.

2. 두산 베어스

내외야가 골고루 기존의 전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군에서 복귀한 손시헌 임재철이 가세했습니다. 손시헌의 유격수 자리는 이대수 이원석 김재호 등 기존 멤버가 풍부하지만, 임재철의 우익수 자리는 작년 시즌 내내 두산의 골치거리였음을 감안했을 때 임재철의 적응 여부를 지켜볼 만합니다. 포수가 최승환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지명타자로 기용된 새 용병 왓슨도 체크 리스트. 반면, 투수진은 확 바뀌었는데, 원투펀치였던 두 용병의 교체로 인해 선발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마무리도 신예 이용찬이 맡았습니다.

3. 롯데 자이언츠

관건이었던 이대호 김주찬 등의 포지션 정리는, 일단 김주찬 1루 - 이대호 3루로 결정된 것 같습니다. FA 홍성흔이 아직 수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DH로 출전한다고 하면, 정보명 박현승 등은 우선 백업으로 정리될 듯싶습니다. 에이스 손민한의 컨디션 난조로 인해 선발진의 등판순서는 다소 변경이 있지만 큰 변화는 없습니다. 단, 새로운 클로저 애킨스가 국내 야구에 적응할 것인지가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4. 히어로즈

원래 타팀에 뒤지지 않았던 외야 라인에 새 용병 클락이 가세하면서 기존 전력에 플러스가 되었고, 군에서 복귀한 오재일은 이숭용과 함께 1루를 맡게 됩니다. 작년 시즌 중반까지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던 내야진은, 작년 말에 정리된대로 2루 김일경 - 3루 황재균 - 유격 강정호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장원삼이 아직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해 선발 등판순서가 바뀌면서 마일영이 개막 선발로 나왔지만 전체적인 선발진에 큰 변화는 없으며, 마무리만 황두성으로 바뀌었습니다.

5. 한화 이글스

2008 선발 타자 9명 중 절반 이상이 바뀌었습니다. LG와 공동으로 가장 많은 선수가 바뀐 팀이 한화인데, 특히 외야진이 싹 바뀌어버렸습니다. 클락 대신 선택한 새 용병 디아즈는 홈런 2개를 날리며 출발이 좋고, 1번타자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불러온 강동우도 초반 출발이 괜찮습니다. 기존의 김태균 이범호 김태완에 새용병 디아즈와 시범경기 히어로 송광민의 가세로 타선의 무게감은 롯데 외에는 견줄 팀이 없을 정도. 그러나 한상훈의 공백을 메울 2루수 오선진과, 수비 대신 공격을 택한 유격수 송광민의 키스톤 콤비는 수비에서 많은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2008 시즌 8개구단 중 가장 내야가 안정되었던 한화의 팀컬러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2008년 1선발이 2009년에도 1선발로 등판한 팀은 한화의 류현진이 유일합니다.

6. SK 와이번스

9명의 타자가 포지션까지도 전년도와 차이 없이 베스트 멤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승팀의 베스트멤버답게, 새 얼굴이 끼어들 틈도 없이 시즌을 시작합니다. 이진영과 채종범이 다른 팀으로 옮겼고 레이번은 교체되었지만, 그렇다고 구멍이 보이지는 않는, 여전히 튼튼한 전력입니다. 다만, 김광현의 컨디션 난조가 선발진의 구성에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7. KIA 타이거즈

KIA도 SK만큼이나 기존 베스트 멤버가 그대로 유지된 팀입니다. 2008 시즌 도중 교체된 두 명의 용병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그대로이며, 발데스의 공백은 우선 2년차 내야수 김선빈이 주전으로 기용됩니다만 아직 안타는 없습니다. KIA가 2008 시즌 부상의 악령 때문에 베스트 멤버를 쭉 유지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문제는 이 멤버가 얼마나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8. LG 트윈스

LG도 9명의 타자 중 절반 이상이 바뀌었고, 그 중 3명은 작년에 팀에 없던 선수들입니다. FA로 영입한 이진영 정성훈, 그리고 군에서 복귀한 박병호가 우선 주전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DH인데, 아직 수비를 맡기기는 불안한 유망주의 테스트 자리로 DH를 쓰는 것은 더이상 없어도 될 듯합니다. 마무리는 일단 우규민이 1안이지만, 아직 주전 클로저로 확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2009프로야구, 8개구단의 아킬레스건 찾기
2009 시즌을 준비하는 두 번째 포스팅. 8개구단이 저마다 겨우내 단점을 보완하고 전력을 담금질한 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력보강이 생각보다 성에 차지 못해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밟히는 곳이 꼭 나오게 마련입니다. 저마다 4강을 다짐하며 출사표를 던진 지금, 시범경기까지 마친 각 팀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봤습니다.

1. SK 와이번스


공교롭게도 "최고 포수" 박경완을 보유한 SK의 최대 고민거리가 포수입니다. 당초 부상자가 많아 고민이었던 외야진은 김강민의 수술 회복이 예상보다 빨라 근심을 덜었지만, 포수진은 박경완을 비롯해 부상자들만 가득합니다. 박경완은 부상을 안고도 WBC 강행군을 치르면서 제 컨디션이 아니고, 이재원은 수술로 반시즌 정도는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정상호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정상호조차도 부상을 안고 있는 상태. 박경완과 정상호의 부상이 얼마나 빨리 완치되느내가 SK의 초반 기선제압에 큰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2. 두산 베어스


두산의 가장 큰 고민은 선발진. 작년 시즌에도 크게 뛰어난 선발진은 아니었는데, 여기에 이혜천까지 빠진 상태로 시즌을 준비하다가, 개막을 앞두고 랜들의 부상으로 퇴출이 결정되어 사실상 붙박이 선발은 김선우 정재훈 김명제만 남았습니다. 김선우가 에이스의 몫을 해준다고 해도 뒤를 받쳐줄 랜들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데 과연 정재훈이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시범경기에서 깜짝 선발카드로 나타난 노경은은 정규리그에서도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그나마 두산의 걱정이 덜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팀보다 선취점 획득에 능한 타선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선발투수가 허약해도 맞대응할 수 있고, 불펜이 튼튼해 선발이 긴 이닝을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것이 두산이 객관적인 전력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죠.

3. 롯데 자이언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스트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롯데가 SK보다 더 우위라고 봅니다. 다만 긴 시즌에 돌발되는 부상 등의 변수에 큰 데미지를 입지 않는 풍부한 선수층에서 조금 뒤진다고 보아야겠죠. 로이스터 감독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 롯데는 주전의 비중이 8개구단 중 가장 높았던, 다시 말해서 백업 요원의 비중이 가장 낮았던 팀입니다. 정보명 박현승 이승화 박남섭 등의 타자들과, 김사율 이정민 김이슬 등이 투수들이 좀 더 분전해서 출장기회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삼성 라이온즈


용병 농사도 시원치 않았고 8개구단 선발 평균자책 최하위를 기록했던 삼성이, 그나마 있던 선발투수 전병호를 은퇴시키고 이상목을 방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장원삼이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삼성의 선발진은 배영수 윤성환과 용병 2명의 몫입니다. 과연 배영수가 부상 후유증을 떨치고 에이스의 포스를 되찾을 것인지, 그리고 용병 2명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인지, 나아가 마지막 선발 한 자리로 유력한 조진호가 최소 작년의 이상목 정도를 해줄 수 있을 것인지, 지금 삼성의 선발진은 불투명한 것 투성이입니다. 여차하면 또 정현욱이 선발까지 오가는 "노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5. 한화 이글스


한화는 올 시즌에도 작년과 엇비슷한 색깔을 보일 것 같습니다. 김태균과 이범호는 WBC를 거치면서 완전히 물이 올랐고, 여기에 거포 유망주 송광민이 시범경기에서 눈도장을 찍은 상태. 즉,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클락까지 빠진 상태에서 "발야구"가 아쉽기는 하지만, 거포 위주의 공격야구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에 결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선발진. 류현진의 뒤를 받쳐줄 선발진은 현재 김혁민 유원상 안영명으로 내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선발로 검증되지 않은 이 선수들이 제 몫을 해주지 못할 경우, 노쇠화가 뚜렷한 송진우 정민철 최영필의 몫이 커지거나, 또는 "실전용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허유강에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6. KIA 타이거즈


가장 그라운드가 낙후된 광주구장을 홈으로 쓰는 KIA 선수들은 유독 부상이 많습니다. 베스트 컨디션 하에서 KIA의 전력은 4강권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늘 부상 선수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장기 레이스에서 뒤로 쳐지곤 합니다. 그 부상병동이 가장 집약된 포지션이 유격수. 올 해는 홍세완이 드디어 복귀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미지수. 게다가 김선빈까지 시범경기 중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현곤과 김종국도 유격수 수비는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2-3루에 마땅한 백업이 없는 상태. 걸출한 신인 안치홍은 공격은 괜찮지만 아직 수비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개막 후 1~2개월 내에도 유격수 포지션에 답이 안 나온다면, 아마 KIA는 트레이드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7. 히어로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히어로즈이지만, 올 해는 경영진도 "장원삼 트레이드 무산" 후부터는 상식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 같고, 김시진 감독도 컴백했으니 팀은 많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유니콘스 시절 워낙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약팀이라고 할 수 없는 고른 선수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불펜 투수들이 타팀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이 고민인데, 올 해는 다카쓰와 재계약하지 않고 박준수도 시즌 초 합류가 어렵다고 합니다. 작년보다 플러스 전력으로 꼽을 수 있는 선수는, 부상을 많이 떨친 이정호, 상무에서 돌아온 오재영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존의 조용훈 송신영 등과 짝을 이루어도 아직 중량감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8. LG 트윈스


투타에 있어 총체적인 문제 투성이었던 LG. 시즌이 끝난 뒤 두 명의 FA를 영입했고, 박용택 권용관 등이 경쟁체제 하에서 좀 더 각성한 모습을 보이면서 공격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투수진인데, 작년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은 이동현의 재활 뿐입니다. 특히 마무리 투수가 8개구단 중 가장 불안한데, 우규민 이동현 이재영 3명 중 최종 클로저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탈락한 두 명은 미들맨이나 셋업맨으로 가겠죠. 우규민은 결정구가 부족하다는 점, 이동현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 이재영은 제구력이 불안하다는 점 등 저마다의 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김재박 감독도 쉽게 마무리 낙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봉중근을 마무리로 돌린다는 말도 나왔는데, 박명환의 복귀가 늦어지고 옥스프링도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 때문에 봉중근은 무조건 선발로 고정될 것 같고, 결국 이 3명 중 마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47 대신 51, 이상훈 대신 봉중근

○.. No. 47 “추억”

그의 등번호는 47.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가 시원하게 공을 뿌렸다. 그의 왼팔에서 나오는 150km 언저리의 강속구는 구속 이상의 파워가 있었다. 칠 수 있으면 쳐보라는 식의 기(氣)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슬라이더나 커브도 잘 던졌지만, 그의 레파토리는 누가 뭐래도 직구였다. 복판에 꽂아버려도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직구.

그는 승부를 즐겼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야구가 단체경기라고 하지만 마운드에 선 투수의 파이팅은 팀 전체를 지배한다. 그가 마운드에 서면 동료들은 든든했고 상대팀은 주눅이 들었다. 줄무늬 유니폼, 흩날리는 긴머리, 등번호 47번의 “야생마” 이상훈이다.

이상훈이 일본과 미국을 거쳐 다시 LG로 돌아왔을 때, 냉정히 말해 그의 구위는 전성기에 미치지 못했다. 혈행장애로 많은 이닝을 던질 수도 없었거니와, 복판에 꽂아도 타자가 손도 못 대던 강속구의 볼끝은 전성기보다 무뎌져 있었음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고 미국에서 실패도 겪었지만, 그래도 그의 기(氣)는 여전했다. 여전히 타자와의 싸움을 즐겼고, 터프하게 위기를 막아냈다. 기가 실린 직구는 구속이 몇km 줄었어도 여전히 타자를 압도했고 경기를 지배했다.

이상훈이 감독과 프론트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팀을 떠난 뒤, LG 마운드에는 경기를 지배하는 투수가 없었다.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가 나오면 LG팬들은 “제2의 이상훈”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그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단지 공이 빠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자를 압도하는 기백,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배짱, 아무도 이상훈을 따라갈 수 없었다.

○.. No. 47 “도전”

이상훈이 팀을 떠난 후 3년이 흐르고 LG에는 다시 등번호 47번을 단 왼손 투수가 들어왔다.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으로 따지자면 이상훈의 “14타자 연속 K”를 능가하는 “거물”이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일찌감치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미국으로 진출했고, 그 대단한 커트 실링과 맞상대를 하면서도 씩씩하게 공을 뿌리던 청년이었다.

봉중근. 하지만 냉정히 말해 그는 미국에서 부상으로 인해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던 중이었다. 1회 WBC에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의 구위는 국내 리그에 뛰는 선수보다 뛰어날 것이 없었다.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는 대신 팀을 옮겨 다니기 시작하고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시간이 더 길어진 그 투수가 10억의 계약금을 받고 LG에 입단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국 물 먹던 선수인데 국내 리그에서 평균은 하겠지”라는 기대는 두어달 만에 무너졌다. 새로운 47번은 2군으로 밀려났다.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익힌 체인지업 유인구는 국내 타자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부상 이후 줄어든 구속으로는 타자를 윽박지를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티즌들은 그를 “봉미미”라고 불렀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용병 메존이 봉중근을 두고 “미미한 선수”라고 표현한 것이 발단이었다. “미미한 선수”라는 놀림을 받으며 2군에 내려간 봉중근이 1군에서 남긴 것은 안경현과의 격투극 뿐이었다.

○.. No. 47 “부활”

먹튀와 미미. 봉중근을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는 그의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모두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진 2군에서, 봉중근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국내 타자들을 전혀 유인하지 못했던 외곽 체인지업 대신 너클커브를 단련했다. 더 큰 변화는 자신감이었다. 외곽으로 도망 다니는 패턴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에서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구사하면서 정면승부가 늘어났다. 물론 그래도 많이 맞았다. 하지만 많이 맞더라도 정면승부를 시작했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겨울 훈련을 충실히 마치고 구속을 회복한 봉중근의 2008 시즌은 전년도와 전혀 딴판이었다. 자신감을 가지자 파이터 기질이 살아났다. 체인지업 너클커브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었지만 역시 주무기는 직구였다. 150km 언저리의 강속구를 복판에 꽂아 넣어도 타자들은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허약한 팀타선의 도움이 없어도 그는 의연했다. 허약한 불펜 사정 때문에 평균 투구수를 상회하는 경기가 잦아졌어도 불평은 없었다. 어느새 그는 경기를 지배할 줄 아는 파이터가 되어 있었고, 47번의 등번호는 비로소 제 주인을 만난 듯했다.

2008 시즌, 봉중근은 평균자책 2.66, WHIP 1.19의 수준급 투수가 되었다. 동료의 빈약한 지원 속에 11승에 그쳤지만, 평균자책과 WHIP은 김광현 류현진과 동급인, 그야말로 에이스였다. 동료의 빈약한 지원이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그는 불평하는 대신 기도를 했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근성, 47번의 원 주인이 떠난 뒤 LG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 No. 51 “변화”

47번이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났다고 LG 팬들이 안도할 즈음, 봉중근은 유니폼의 숫자를 51로 고쳐달았다. “제2의 이상훈”이 아닌, “제1의 봉중근”으로의 변신이다. 그런 봉중근이 자신의 새 등번호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공개한 것은 줄무늬 유니폼이 아닌, 적색과 청색의 대표팀 유니폼이었다. 3년 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섰던 WBC라는 무대.

당초 구상대로라면 봉중근의 역할은 불펜이었다. 선발은 김광현과 류현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새 봉중근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되었다. 믿었던 김광현마저 철저히 두들긴 일본의 강타선을 상대로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에이스는 봉중근이다.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꽂아 넣는 강속구, 승리를 향한 강한 집념과 근성, 마운드 위에 선 한 명의 투수가 뿜어내는 기(氣)는 어느새 경기를 지배했다. WBC 2연패를 위해 독하게 준비했다는 일본마저 눌러버린 에이스의 기백이다.

봉중근의 활약으로 제압한 일본을 미국 땅에서 다시 만났다. 또 봉중근이 선두에 섰고, 그는 다시 일본을 눌렀다. 조그마한 약점도 놓치지 않는 일본의 분석력도 무용지물이었다. 봉중근은 다시 직구를 꽂아 넣었고, 좌우로 기막히게 걸치며 포수 미트에 꽂히는 직구를 일본 타자들은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다. 다시 승리. 그리고 봉중근의 포효. 그렇게 대한민국은 다시 경기를 지배했고, 우리는 4강에 올랐다.

그 일본과 다시 만난 결승전. 아무리 봉중근이라고 해도 일본과 세 번이나 부딪히면 난타 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봉중근의 컨디션도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좌우를 걸치는 봉중근의 직구는 모두 구심이 외면했고, 봉중근은 자신의 주무기를 봉쇄당한 상태에서 일본의 강타선을 상대했다. 힘겹게 틀어막은 4이닝. 봉중근이 허용한 점수는 비자책 1점뿐이었다. 주무기가 없어도 어떻게든 잡고 만다는 집념이 가져온 최대한의 선전이었다.

○.. No. 51 “출발”

일본에 우승컵은 내주었지만 한국의 선전은 매우 눈부셨고, 실질적인 에이스로 힘든 십자가를 진 봉중근의 활약은 대단했다. 짧은 백일몽을 깬 지금, 이제부터는 다시 1년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봉중근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씩씩하게 오를 것이다. 그리고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강속구를 던질 것이고, 승리를 향한 집념은 경기를 지배할 것이다.

그의 등에 새겨진 번호가 47번이 아니라 51번이라고 해서 아쉬울 것은 없다. LG 팬들은 47번 대신 51번, 이상훈 대신 봉중근을 가진 것이므로. 추억 위에 새롭게 오버랩되는 또 하나의 드라마가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미미한 선수”가 아닌,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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